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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박정태] ‘방통대군’ 물러나는게 도리다

[데스크시각-박정태] ‘방통대군’ 물러나는게 도리다 기사의 사진

①재벌오너들과 친구로 지내라 ②세금으로 부자들을 보호하라 ③누가 뭐래도 측근은 챙겨라 ④공과 사를 구분하지 말라 ⑤편법을 두려워하지 말라 ⑥검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라 ⑦언론을 장악하라 ⑧토목공사로 승부하라 ⑨부자동네에 투자하라 ⑩이념은 상관 말라 정권만 지키면 된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자와 측근의 대변자가 된 대통령의 십계명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행적을 기록한 신간 ‘부자들의 대통령’(프리뷰)에 나열된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부자들의 행태를 25년간 연구해온 부부 사회학자인 미셀 팽송과 모니크 팽송 샤를로. 우리와 뭔가 닮은 구석이 있다. 옮긴 이(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는 말한다. “프랑스와 한국의 닮은꼴 대통령”이라고.

권력자 입장에서야 십계명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권력 유지의 기초가 되는 건 ‘언론 장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통제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그 다음은 무얼 하든 만사형통 아니겠는가. “이념전쟁에서 텔레비전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주제이다. 이 이미지 상자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조종하는 가공할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도구를 과두권력이 그들의 대통령에게 봉사하는 데 이용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92쪽)

사르코지의 권력 도구는 TV였다. 법을 개정해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주고, 공영방송 광고를 폐지함으로써 광고수입이 그의 친구들이 사주로 있는 민영방송으로 흘러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명분은 미디어 개혁이었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미디어산업 재편 정책과 무척 흡사하다.

현 정권 출범 후 첫 타깃도 공영방송 사장이었다. 2008년 정연주 KBS 사장을 강제 해임해 몰아낸 게 신호탄이다. 이를 대통령 최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사실상 주도했다. 정권은 그것도 모자라 십계명 가운데 ⑥항의 검찰을 동원했다. 결국 정 전 사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KBS가 국세청을 상대로 낸 세금반환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 조정을 받아들여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게 이유다. 한 편의 코미디다. 조정에 응하도록 한 판사는 배임을 배후 조종했다는 말인가. 지난 12일 대법원이 정 전 사장의 무죄를 확정한 건 사필귀정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정 전 사장의 무죄가 확정되면 책임을 지겠다고 국회에서 두 번이나 공언한 최 위원장은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참으로 구차한 모습이다. 지금 최 위원장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자신의 ‘양아들’로 불리는 핵심 측근이 억대의 금품을 받고 해외로 도피한 사실이 드러나 최 위원장 본인의 연루 의혹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최 위원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게 떳떳하다.

더욱 큰 문제는 최 위원장이 미디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정권에 우호적인 종합편성채널 4개를 무리하게 출범시키고 종편에 광고수주와 관련된 각종 특혜를 줘 방송광고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이나 방송제작과 광고영업의 분리라는 대원칙은 아예 실종됐다. 게다가 정부 여당은 KBS 수신료 인상안까지 들고 나왔다. KBS의 광고 의존도를 낮춰 광고시장 물량이 종편으로 흐르게 하겠다는 노림수나 다름없다.

방송 장악과 종편 특혜의 주역으로 ‘방통대군’이란 별명까지 얻은 최 위원장은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과오를 인정하고 미디어 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데 대해 국민과 역사 앞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지는 게 도리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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