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사법부를 겨낭하는 영화 ‘석궁’ 기사의 사진

몇 년 전이다. 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남자를 목격했다. 박홍우 판사를 욕하는 글을 앞뒤로 매달고 있었다. 얘기를 나눈 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가 석궁사건의 김명호 교수였다. 다음날 응급실에 실려 가는 박 판사의 모습이 뉴스화면을 가득 채웠다. 나는 박 판사가 화살을 맞을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얼마 후 박 판사의 법정에 들어가 재판에 참여했었다. 재판진행의 방식이 특이했다. 증거를 신청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즉각 기각했다. 피고인이 고심해서 쓴 자료들을 제출하는 걸 봤다. 그는 즉석에서 “이거 읽지 않겠습니다”라고 통보했다. 그냥 안 읽으면 될 텐데 굳이 그런 말까지 하는 게 이상했다. 결벽증 같은 자기 의(義)가 강한 판사인 것 같았다. 내가 증인신청을 했다.

그는 공증진술서로 대신하라고 했다. 그에게는 주어진 시간 내에 맡은 사건을 정확히 종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나 변호사인 나의 입장은 달랐다. 박 판사에게 진술서만 읽고 그 행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처럼 의미를 알아낼 능력이 있느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는 마음을 돌려 증인신청을 받아주었다. 이해하면 즉각 방향을 돌리는 담백한 성격 같았다. 아쉬운 건 그는 방청석에서 높은 법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판사의 친절에 국민은 승복한다. 얘기를 들어주고 자료를 읽어주는 법관을 사람들은 신뢰한다. 석궁사건의 배경을 나름대로 짐작했다. 김 교수와 박 판사 그리고 주심인 이정렬 판사의 엘리트주의가 부딪쳐 불꽃이 튄 것 같았다. 학자적 자존심이 남다른 김 교수에게 주심인 이정렬 판사는 ‘교육자적 자질’까지 언급했었다. 법해석이 주무인 판사가 인간에 대한 독단적인 판단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우연히 김 교수 사건을 처음 맡았었던 판사를 만났다. 그는 이 판사와는 전혀 다른 의견이었다. 그는 사건을 맡았을 때 김 교수를 복직시키고 싶었는데 법규정이 없어 불가능했다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독일법 이론을 찾아서 법정에서 김 교수에게 차선책으로 위자료소송이라도 제기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복직시켜 달라는 거지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서 거절을 하더라고 했다. 그 판사는 후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을 보면서 김 교수가 이제는 복직을 하겠구나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다.

같은 판사들이라도 시각이 전혀 달랐다. 석궁사건을 취재해서 책을 낸 작가 서형씨가 사무실로 찾아왔었다. 그는 판사와 김 교수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고 했다. 시각과 의견이 다른 그를 양쪽에서 공격하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르면 그걸 바로 악으로 규정하는 버릇이 있다.

김 교수를 담당했던 박훈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재판장에게 물병을 던지고 감옥으로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판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어떤 증거신청을 해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 석궁사건이 영화 ‘부러진 화살’이 되어 나왔다. 배우들의 얼굴만 보아도 선악이 갈리도록 연출을 한 느낌이지만, 핵심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다. 영화는 제3자의 눈을 통해 판사의 권위주의와 기회주의적 행동이 진실을 왜곡시킬 가능성을 고발했다.

독재정권시절에도 영혼이 없는 재판부에는 야유와 검정 고무신이 날아갔었다. 판사에게는 악법도 법이었지만, 저항권을 행사하는 국민에게는 그건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 판사도 문제 삼고 있다. 재판 현실에서 일방적으로 증거를 배척하는 판사를 말한다. 일리가 있다. 천장을 보면 바닥이 안 보인다. 법적 관점은 또 진실 발견에서 맹점일 수도 있다. 그게 재판의 문제점이다. 사법부와 국민 간 소통이 되지 않고 막혀 있다. 거기서 오해가 생기고 상대방을 괴물이라고 단정하는 망상이 피어난다. 영화라는 거대한 문화적 석궁이 사법부 전체를 겨냥하는 오싹함이 느껴진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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