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백석을 찾아서] ③ 통영에 두고 온 사랑 기사의 사진

친구 혼인축하 자리서 딱 한번 본 박경련 향한 순애보

백석은 세 차례에 걸쳐 경남 통영을 다녀간 것으로 여겨진다. 첫 번째는 1935년 6월 어느 날이다.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 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줏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통영’ 전문·‘조광’ 1935년 12월호)

‘저문 유월’이라 했으니 백석은 비 내리는 여름에 통영을 찾았던 것이다. 백석은 왜 통영을 찾았던 것일까. 1935년 6월 초에 열린 친구 허준의 혼인축하회식이 그 발단이다. 회식은 허준의 외할머니가 경영하던 낙원동 여관에서 열렸다고 한다. 허준의 신부 신순영은 서울 서대문 죽첨보통학교 교사로, 허준의 단짝이던 신현중의 여동생이었다.

회식 자리엔 허준 부부와 백석, 신현중, 그리고 현중 누나인 순정의 통영학교 제자 김천금과 박경련, 그리고 경련 외사촌 서숙채가 참석했다. 김천금은 경성여고보, 박경련은 이화고녀, 서숙채는 숙명고녀에 재학 중인 곱고 어여쁜 여학생이었다. 백석은 세 처녀 가운데 박경련을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경련은 은사인 순정이 경기도 포천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순영의 집을 드나들며 신현중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혼인축하회식을 마친 6월 어느 날 백석은 신현중과 함께 통영에 들렀던 것이다. 하지만 백석의 시 ‘통영’에는 아직 박경련에 대한 연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천희’라는 남도 처녀의 우수에 젖은 비극적 사랑과 호응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1936년 1월 8일 전후에 이루어진 두 번째 통영 행에서 백석은 통영에 가게 된 속사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내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장은 갓 같기도 하다// (중략)//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 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중략)// 영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통영-남행시초’ 부분·조선일보 1936년 1월 23일자)

이 시에 의하면 백석은 구(舊) 마산 선창에서 연락선을 타고 통영으로 갔다. 19세기 말 마산엔 일본인과 러시아인들이 들어와 새 시가지를 형성했는데 그 지역이 신 마산, 이전 지역이 구 마산이다. 시에서 ‘열나흘’은 음력 12월 14일, 양력으로는 1936년 1월 8일이다.

백석은 통영 명정골의 유래와 풍광을 언급하면서 그곳에 사는 여인 ‘난(蘭)’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내비친다. ‘난’의 집, 아니 박경련의 집은 명정골 396번지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경련을 만나지 못한 채 쓸쓸하게 경성으로 돌아온다. 이때의 심정을 담은 글이 조선일보 1936년 2월 21일자에 실린 산문 ‘편지’이다. 산문은 백석 시집 ‘사슴’을 받아보고 답례로 시 ‘수선화’를 써준 신석정 시인에게 백석이 보내는 감사의 답신 성격을 띠고 있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 하였습니다. 그가 열 살이 못되어 젊디젊은 그 아버지는 가슴을 앓아 죽고 그는 아름다운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섣달에도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이 낡은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에서 그늘진 풀같이 살아왔습니다. 어느 해 유월이 저물게 실비 오는 무더운 밤에 처음으로 그를 안 나는 여러 아름다운 것에 그를 견주어 보았습니다. (중략) 총명한 내 친구가 그를 비겨서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는 나도 기뻐서 그를 비겨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나의 수선이 시들어 갑니다. 그는 스물을 넘지 못하고 또 가슴의 병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박경련을 사모했으니 24세 열혈 청년이던 백석이 다시 통영을 찾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엔 지방 출장을 핑계 삼아 박경련에게 전보까지 친 뒤 역시 신현중과 동행한 길이었다. 그러나 백석이 통영에 도착한 날은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통영에 머물고 있던 박경련이 상경하는 바람에 엇갈리고 만다. 대신 백석은 그녀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의 대접을 받는다. 백석 일행이 탄 연락선이 통영 부두에 닿았을 때 뜻밖에도 서병직이 선창가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통영 장 낫대들었다// 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저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파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서병직씨에게”(‘통영-남행시초2’ 전문)

‘열이레 달’이란 음력 1월 17일이니 양력으로 2월 9일에 해당한다. 백석은 서병직의 안내를 받아 통영 장에 갔다. 그곳에서 갓과 건시(마른 곶감), 홍공단(붉은 비단)과 술 한 병을 사들고 커다란 기선이 들어오는 선창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끝에 붙은 ‘서병직씨에게’라는 헌사는 박경련 대신 마중을 나와 통영의 곳곳을 구경시켜 주고 객줏집까지 안내했던 서병직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낸다.

이 시는 백석이 1936년 3월 6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발표한 것으로 3월 5일부터 8일까지 하루 한 편씩 연재된 ‘남행시초’ 네 편 가운데 한 편이다. ‘남행시초’ 네 편에 각각 창원-통영-고성-삼천포가 제목에 언급돼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백석은 신춘 기행시를 쓴다는 명분으로 통영에 들렸던 것이다. 백석은 세 번에 걸쳐 통영을 찾았으나 정작 박경련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회식 자리에서 한 번 본 처자에게 반해 머나먼 통영 행을 세 번이나 감행했던 백석은 그만큼 순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편의 ‘남행시초’ 연작시에 박경련에 대한 상념은 전혀 표현되지 않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백석이 자신의 연애감정에 대한 완급을 어느 정도 조절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기행시편을 써서 발표한다는 핑계로 통영 출장을 왔지만 막상 박경련의 부재 사실을 알고 당황했을지언정 감정의 과잉은 그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1936년 4월 초, 신문사를 그만두고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옮겨간 뒤 백석이 그해 12월 겨울 방학을 틈타 상경해서 친구 허준에게 “박경련에게 청혼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백석 연구자 송준·박태일 경남대 교수).

그의 통영 행을 두고, 세 번이냐 네 번이냐는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시인 백석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김재용 원광대 교수는 “학계에서조차 백석과 통영과의 관계를 논할 때 유독 ‘박경련’이란 존재를 부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자칫 백석의 통영 관련 시를 연애감정에 국한시킴으로서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백석이 시 ‘통영’에서 ‘난’을 언급했다고는 하지만, 백석에게 통영의 풍광과 역사에 대해 알려준 이는 정작 박경련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이었다”며 “시 ‘통영-남행시초2’에 깃든 리얼리티는 서병직의 존재로 인해 한층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백석의 몇 차례에 걸친 통영 행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그가 연정을 품었던 박경련(‘난’)도, 동행했던 친구 신현중도 아닌 서병직이라는 것이다.

백석이 남행 시절에 쓴 시편들에서 실제 이름을 언급한 이는 서병직뿐이다. 박경련마저 ‘난’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음에도 불구, ‘서병직씨에게’라고 실명을 밝히고 있는 점은 그 자신이 통영에서 서병직으로부터 받은 접대와 정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다. 서병직은 백석과 함께 통영의 객줏집과 뒷골목, 그리고 장터 등을 낱낱이 훑으면서 박경련에 대한 연정으로 들끓던 백석의 체온을 식혀준 인물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자아를 일개 연인에서 시인으로 확장시킨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 순)

김재용(납북월북작가 전문가·원광대 교수)

이동순(시인·영남대 교수)

이숭원(한국시학회 회장·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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