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동작동 국군묘지 기사의 사진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정략적 발길에 현혹되는 우민이 아님을 명심해야”

‘동작동 국립현충원’. 시민들에게는 ‘동작동 국군묘지’가 더 친근한 이름이다. 현충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6·25전쟁 때 전사한 젊은이들의 묘비가 늘어선 묘역이 우리 앞에 다가선다. 돌이끼가 낀 묘비들을 보면 목이 멘다.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바쳤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는 독전가(督戰歌)를 부르면서 전쟁터로 나가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다.

2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당시 한 인기 작가는 동작동 국군묘지를 가리켜 ‘분단의 원흉들이 묻혀있는 곳’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통일지상주의자’ ‘민족지상주의자’라고 자처했다.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지사처럼 박수를 받았다. 치기 어린 역사의식에 갇혀 있었던 그 작가만이 그랬을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도 그랬지만,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도 최고위원들을 대동하고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면서 역대 대통령 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했다고 한다. 그들의 창당 일성은 정권심판론으로 빼앗긴 정권을 되 찾겠다는 것이었다. 이어 한 대표 일행은 광주 망월동 민주열사묘역을 참배했고,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 앞에서 정권 재창출의 의지를 다졌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있더라도 죽은 자 앞에서는 상대에게 가졌던 미움도 원한도 정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정당 대표자들은 죽은 자 앞에서 숨겨놓았던 녹슨 칼을 꺼내어 갈면서 잊어버렸던 맹세를 다시 했다. 얼마나 한이 맺히고 정권에 대한 욕망이 불타올랐으면 그럴까. 그러나 국민은 복수를 위해 정권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유권자의 50.1%의 지지만 얻으면 대통령이 되어 최고 권력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지지해준 50.1%의 대통령이 아니다. 반대했던 49.9%의 대통령이 돼야 하고,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파 소속이었건 간에 ‘역사에 부끄러움 없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한 대통령이 되려면 모든 과거를 껴안고 현재 위에서 미래를 향해 대통령 직을 수행해야 한다. 정권을 잡은 자가 과거의 적과 동지를 아우를 수 없다면 그는 정치가가 아니라 한 정파의 보스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들과 대통령을 만들어내려는 자들은 정략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정치와 대통령의 일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념과 정략의 울타리에 갇힌 경직된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의 축적으로서의 역사를 인식하는 안목도 갖추어야 한다.

국군묘지에 잠들어 있는 용사들의 묘역 앞에서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자라면, 그 유명(?) 작가의 편향되고 치기 어린 모습과 다름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역사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 수립을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이라고 폄훼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기에 오늘의 민주통합당이 가능하고, 시민운동가(?)가 서울시장이 될 수 있고, 민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통일정부를 이룩하지 못한 것은 한이지만, 이 정도의 민주국가를 이룩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망월동 민주열사들의 공이 컸겠지만, 그들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은 묘지정치를 즐기는 그들도 너무 잘 아는 사실이다.

오늘의 한국을 이룩하는 데는 이승만 박정희 윤보선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무명용사들, 4·19 영령들, 광주 민주열사들의 힘과 이름도 없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온 한국인의 삶의 축적임을 부인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국민들은 미래의 밝은 정치를 애타게 기대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정략적인 발길에 현혹되는 우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판이 왜 이렇게 경박해졌는가?

현길언 소설가 (본질과현상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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