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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47) 1930년대 진보적 신학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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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 의한 신학적 논의·활동 구체화

초기의 보수적 신학과는 달리 1930년을 전후해 한국교회에는 ‘신학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선교사 중심의 신학에서 한국인에 의한 신학적 논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감리교의 경우는 이보다 앞서지만 1930년대부터 한국인의 신학 활동이 구체화 되었다. 한국인 학자들이 연구와 집필, 신학교육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한국인에 의한 주체적 신학연구의 시작이자 선교사 중심의 신학으로부터의 독립이기도 했다. 그래서 유동식은 1930년대(1929∼1939)를 ‘한국신학의 정초기’라고 불렀다.

이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장로교의 김재준 남궁혁 박형룡 백낙준 이성휘 송창근 채필근, 감리교의 김인영 김창준 변홍규 양주삼 정경옥 최병헌 등이었다.

두 번째 변화는 기존의 보수주의 신학과는 다른 ‘새로운 신학’ 혹은 ‘다른 전통’이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1930년 이후에도 보수주의 신학이 한국교회 신학의 주류를 형성하지만 이때부터 보수주의적 아성이 공격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1930년을 전후하여 한국교회에는 어떤 신학적 변화가 있었는가? 이 변화는 3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진보적 신학의 대두, 신비주의 운동, 그리고 일본 무교회사상의 유입이다. 이를 순차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1930년대 이전에도 보수신학과는 다른 신학적 문제가 제기 된 일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황해노회 김장호(金壯鎬, 1881∼?)의 성경해석이었다. 평양신학교 제7회(1914) 졸업생으로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공위량(William C Kerr)의 비서로 일한 그는 1916년부터 성경의 기적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기 시작했다. 즉 출애굽기의 ‘홍해를 건넌 일’(渡江)은 기적이 아니라 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물이 없는 육로로 이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밀물과 썰물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또 마가복음 6장34절 이하의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도 기적이 아니라 각자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을 뿐이라고 하여 초자연적 이적을 부인하였다. 이 일로 그는 1918년 노회로부터 제명되었다. 1925년에는 게일(Gale, 奇一)의 의역본(意譯本) 성경 문제로, 1926년에는 캐나다연합교회 선교사 서고도(William Scott)의 성서비평학 도입건으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 지역의 문제로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다.

1930년대부터는 ‘다른 전통’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총회적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이를 흔히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라고 말하지만 그 주장이나 학맥(學脈)으로 보면 종래의 보수적 해석과 입장을 달리했을 뿐으로 굳이 말한다면 신정통주의 신학에 가깝다. 이 신학을 보수적 신학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보아 ‘진보적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견해를 보여주는 분명한 사건은 1934년 장로교 총회에서 문제시되었던 모세의 창세기 저작 부인과 여권(女權)의 문제였다. 일본 관서신학교 출신으로 서울 남대문교회 목사였던 김영주(金英珠)는 “창세기는 모세의 저작으로 볼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함경북도 성진(城津)의 성진중앙교회 김춘배 목사는 ‘기독신보’ 제977호에 기고한 ‘장로교 총회에 올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글 가운데 ‘여권문제(女權問題)’라는 항에서 “‘여자는 조용하라. 여자는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 것은 2000년 전의 일개 지방교회의 교훈과 풍습이지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고린도전서 14장33∼34절까지의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였다. 1935년에는 ‘아빙돈 단권성경주석(The Abingdon bible Commentary)’사건이 총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젊은 신학도들은 미국교회의 한국선교 50주년을 기념, 1934년 아빙돈 단권성경주석을 번역 출간했는데 이 주석이 보수적 입장과 다른 신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 된 것이다. 이 번역에 참여한 이들은 감리교의 유형기 양주삼 변홍규, 장로교의 김관식 김재준 송창근 조희염 채필근 한경직 등이었다. 감리교회에서는 문제시 되지 않았으나 장로교회에서는 총회적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신학적 변화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표는 성경관의 변화였다. 이때부터 ‘완전영감설(完全靈感說)’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성경 비평학이 도입되었다. 김양선은 1934년 장로교 제23회 총회에 제소된 창세기 저자문제와 여권문제를 가리켜 ‘전 교회가 문제 삼은 성경의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에 의한 최초의 사건’이라고 불렀다. 창세기의 모세저작 부인건과 여권문제에 대해 장로교총회는 평양신학교 교장 라부열(Stacy L. Roberts)을 위원장으로, 박형룡을 서기로 연구위원회를 구성했다. 1935년의 장로교 제24회 총회는 조사보고서를 채택하였다. “창세기가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고 하는 반대론은 근대의 파괴적 성경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이론인바…(중략)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문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니라’(조선 예수교 장로회 신조 21조)고 믿고 가르치는 우리 장로교회로서는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여권 문제에 대해서도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에서 여자가 교회의 교권을 담당하는 것을 불허한 말씀은 2000여 년 전의 한 지방교회의 교훈과 풍습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미 임직을 받은 교역자가 그런 교훈을 하거든 노회는 그 교역자를 권징조례 6장 42조와 43조에 의하여 처리케 할 것입니다.” 이보고서는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김영주 김춘배 목사의 사과와 기존 입장 취소로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아빙돈 단권주석 사건도 총회에서 사과를 요구함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한국교회의 보수주의 신학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고신대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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