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정치는 매 맞으면서 자란다 기사의 사진

기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깊은 뜻은 모른 채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깔끔한 차림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해석했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서 문득 그 말씀이 떠올랐다.

정당들이 앞 다퉈 옷을 갈아입고 있다. 먼저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재야 정치 세력 및 시민단체 등과 통합하면서 민주통합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현존 정당 중에서 역사가 가장 긴 집권 한나라당도 옷을 갈아입기 위해 새로운 당명 공모에 들어갔다.

선거는 정치 쇄신의 轉機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다. 국민의 심판을 앞두고 집권당과 제1야당 모두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철이 지나 국민들의 눈길을 끌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모양을 다 낸다. 국민들은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느냐며 정당들이 옷 갈아입는 데 대해 시큰둥하다.

정당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냉소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사람이 새 옷을 입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나아가 심기일전의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설 등 명절에 새 옷을 입는 것도, 정당들이 양대 선거를 앞두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그러한 까닭일 터이다. 정당들이 새 옷을 입고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또 그래서 선거가 좋은 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정당들이 이제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을 것이다. 금년의 양대 선거는 특히 복지공약 경연장이 될 게 틀림없다. 이제 서민들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돈 걱정하지 않고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정당들이 좋은 공약을 내걸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다만 그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내 놓고 집권한 정당은 청사진을 실현시키지 못할 경우 정권을 지탱하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선거 때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대가 지났음은 현 정권이 747공약 등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겪고 있는 어려움이 말해준다. 국민이 정당의 공약 이행 여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본다는 것은 정치가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예 중 하나일 터이다.

언론에 맡겨진 악역

올해는 나라 전체가 갈등으로 들끓을 게 빤하다. 집권을 위한 여야 간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각 분야에서 모두가 제 몫을 챙기겠다고 목청을 높일 것이다. 이념 갈등, 빈부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노사 갈등 등등 갈등이란 갈등은 모두 분출할 것이다. 총선이나 대선 중 하나만 있는 해에도 그랬는데 올해는 두 선거가 겹쳤으니 불문가지다.

그러한 갈등으로 나라가 좀 혼란스럽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파국으로 이어질 정도만 아니면(기자는 이제 우리 정치도 어지간한 갈등은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고 믿는다) 갈등도 긍정적 측면이 더 강하다. 정반합의 변증법에 따라 서로 반대되는 논리가 부딪쳐 더 좋은 제3의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정치만큼 욕먹는 분야도 드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블랙 코미디의 주 소재는 정치이거나 정치 지도자들이다. 정치를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은 나 자신을 포함한 기자들이 아닐까 싶다. 정치와 정치인들이 가지는 빛과 그림자 중 그림자 쪽을 더 강조한 탓일 터이다.

정치는 욕을 먹지만 우리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또 따지고 보면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크다. 또 정치는 욕먹는 만큼 발전한다. 백주에 투개표 부정이 횡행했던 자유당 때, 공화당 때의 선거와 지금의 선거를 비교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게 다 정치가 욕먹은 덕이다. 또 정치가 욕먹지 않았으면 정당들이 지금처럼 쇄신하겠다고 안간힘을 쓰겠는가. 그래서 맞으면서 자랄 운명이 정치이고, 정치를 욕할 수밖에 없는 악역의 팔자가 언론이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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