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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송병구] 삼수갑산 자처한 고생길

[삶의 향기-송병구] 삼수갑산 자처한 고생길 기사의 사진

대학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 앞서는 것을 보니 봄 학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입시전쟁으로 한바탕 진통을 겪고 난 후 기쁨도 잠시, 이젠 집집마다 등록금 염려로 숨이 턱에 찰 것이다. 겨울 한파보다 더 오그라든 경제사정으로 새내기 대학생들은 들뜰 여유가 없다.

신학교 역시 입학 사정을 거의 마무리했을 것이다. 아직은 신학을 선택하는 지망생들이 아주 모자랄 정도는 아니지만 해마다 경쟁률이 하강 곡선을 긋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만큼 고생을 사서 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이다. 교회가 자주 실망을 끼친 탓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안팎의 나이에 결단을 한 신학생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새해를 맞아 모교 동문회 신년모임에 참석하였다. 개교 125년을 기념하여 동문들의 글 모음집 출판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연륜이 느껴지는 부피의 ‘내 인생의 카이로스’란 책을 받고 보니 새록새록 신학생 시절이 낯설게 느껴진다. 역시 시간은 과거로 거스를수록 그 생경함이 반갑다.

다시 새사람을 부르신 까닭은

무려 1937학번부터 2000학번까지 참여한 문집은 두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시대의 변화와 세대의 감수성을 담아 두었다. 누구나 추억하는 신학생 생활은 피난살이처럼 가난하고, 세상과 담 쌓은 듯 소박하였다. 이른바 일제 강점기부터 민주화 시대까지 역사의 아골 골짝을 살아온 예비 목회자들에게 고맙게도 신학교는 정든 어머니였고, 교수님은 다정한 품이었다.

신학교를 찾아온 그들은 사실 가난과 고생을 자원한 젊은이들이었다. 어느 선배는 신학교에 진학하면서 등록금 걱정은 마시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였는데, ‘자신에게 준비된 그릇이라고는 고생바가지였다’고 회고하였다.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진급과정에서 숱하게 듣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첫째, 삼수갑산이라도 가겠는가? 둘째, 겉보리 서 말 받는 곳이라도 가겠는가?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목회자 파송제 시절, 오죽하면 감독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목회자들에게 흑염소 한 마리씩 선물로 주었다. 물론 흑염소를 받은 목회자는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를 되갚아야 했다. 얼마 전만 해도 목회자 자녀들은 흑염소 젖을 먹고 자랐다. 동역자를 배려한 흑염소 이야기는 당시 연회 회의록에 따듯한 인정처럼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 눈물 반, 한숨 반에 담긴 헌신으로 오늘의 교회가 성장하였다. 한때 성장 기세에 따라 신학생들이 몰려들었고, 그리고 얼마 전부터 모두가 우려할 만큼 주춤한 상태가 되었다. 요즘 신학생들은 성공시대를 꿈 꾸거나, 성공의 대물림을 기대하며 양지바른 선택을 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교회의 성취가 한낱 과거가 된 지금, 다시 새사람을 부르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룩한 옷을 입는 마음 새겨야

왜 목회자인가? 새벽에 일어나 무릎 꿇는 까닭은 시대에 민감하라는 이유다. 거룩한 옷을 입는 마음은 사람의 아픔을 닦아주라는 뜻이다. 그리고 가난한 살림살이는 애초부터 교회가 청빈과 비움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이미 입학하기 전부터 눈이 시리도록 보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산지식 아닌가.

이젠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흑염소를 나누어 주지는 않지만, 그 신실한 동역의 마음조차 잊을 수는 없다. 비록 화려한 스펙은 없지만 부르심을 확신하고 ‘사서 하는 고생길’을 선택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송병구(색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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