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우리’라는 이름의 족쇄 기사의 사진

정당들이 4·11총선 준비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총선 8개월쯤 후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정당들, 그 중에서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정권을 건 대결전을 시작했다고 하겠다. 새누리당은 문패를 갈아달기까지 했지만 아직도 기를 못 펴고 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기세를 올리는 중이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승패를 추측하기는 어렵잖다. 새누리당의 패색이 짙다는 뜻이다.

하긴 선거 분위기란 시시각각 변한다. 지금의 상황만으로 선거결과를 점치기는 어렵다. 그것을 누구보다 정당들이 더 잘 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뻔하다. 지금은 각 정당이 당의 정비, 공천 등에 매달려 있지만 이 작업이 일단락되면 그때부터 상대 정당과 그 후보들을 향해 포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정치인들의 유별난 집단주의

그거야 자연스런 일이지만, 올해의 양대 선거가 너무 격렬해지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다. 지역구 예비후보까지 ‘MB심판의 적임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처음으로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개인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흔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집단적 응징’의 예고 같은 느낌을 준다.

민주통합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중지 및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기로 당론을 정하기도 했다. 이 또한 집단 보복의 공언이나 다를 바 없다. 정부 여당이 체결한 협정은 폐기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정의의 칼을 들어 악의 고리를 끊어버리겠다!” 어쩐지 그런 말로 들린다.

이처럼 정치와 선거라는 것이 집단 대 집단의 패싸움이 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지나친 ‘우리’의식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우리만큼 ‘우리’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국민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이 분야의 문외한이니 잘못 짐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국인의 ‘우리’의식은 유별나다. 아우름을 내포한 ‘우리’가 왜 나쁘냐는 항변이 있을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 말처럼 집단과 집단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용어도 달리 없다. ‘우리’ 안에서는 화합 결속력이 강조되지만 담 너머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계와 배제가 강조된다.

정당, 그 견고한 城砦 허물어야

게다가 더 나쁜 것은 우리 정치인들의 집단지향성이다. ‘패거리 정치’라는 게 보스정당, 권위주의적 정당체제의 자기표현이 아니라 정치인 각자의 자기표현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의원 각자가 입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졌음에도 그들은 무리의 일원이기를 원하고 그 속에서만 안도하는 인상이다. 자신의 제도적 위상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의원은 적은 반면 소속된 집단을 위해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하고, 멱살잡이하고, 해머와 전기톱을 휘두르는 의원은 많다.

동아리의 결속력, 그 구성원의 충성심을 과시하면서 집단 대 집단으로서의 권력, 이익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게 한국 정당정치의 한 단면이다. 집단주의는 대의민주정치와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흔한 말로 궁합이 안 맞는 사이다. 민주정치를 성숙시키자면 집단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집단적 정의가 강조되면 정치는 선악의 대결과정이 되고 만다. 이성은 위축되고 감정과 감성이 정치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복수의 맹세가 박수를 받게 되는 배경에도 정당원들의 집단주의적 사고가 있다. “집단적인 정의감은 개인적인 복수심에 비교하면 훨씬 처치 곤란한 것이다.”(폴 존슨, 세계현대사) 이 경구가 우리의 정당정치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말이지만, 각 정당은 웅거하고 있는 성채를 헐어버려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정당 간의 공성전(攻城戰)에 동원되는 대신 서로에 대한 이성적 합리적 대화와 논쟁, 그리고 협상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중앙당 해체를 거듭 권유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대통령제를 계속 발전 성숙시켜 갈 것이라면 견고하고 거대한 ‘성채정치’는 포기하는 게 옳다. 어느 정당이 이를 공약해 줄까?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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