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오종석] 사기전화방지 법안 뭉갤건가

[데스크시각-오종석] 사기전화방지 법안 뭉갤건가 기사의 사진

이틀 전 기분 나쁜 전화를 받았다. 신문사 경제부로 걸려와 기사제보나 민원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개인 정보를 꼬치꼬치 물었다. A은행 명동지점에서 고객관리 차원에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평소 거래하지 않는 은행이라 사기 전화일 수 있다는 생각에 캐물었더니 상대방은 자신의 이름까지 얘기하며 계속 고객 관리 차원이라고만 변명하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명동지점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그런 직원은 없었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등에 내 정보가 이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쾌했다.

일주일 전에는 휴대전화로 부동산 투자를 권유하는 전화가 왔다. 내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딴청을 피웠다. 경기도 파주에 좋은 땅이 있다며 부동산 투자를 권유했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없으니 다시는 이런 전화를 하지 말라고 호통쳤다. 상대방은 듣기 거북한 욕설을 퍼부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화가 나 걸려온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 번호였다.

요즘 이와 비슷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팀장은 최근 군에 간 아들 부대의 장교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사고로 입원을 했으니 급히 돈을 입금하라는 전화였다. 가슴 철렁했지만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는 판단에 해당 부대로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닌 사기 전화였다.

보이스피싱은 2000년 대만에서 시작돼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피해규모가 8244건, 1019억원에 이르렀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가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신인도가 높은 은행이나 공공기관의 전화번호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다. 현재 법률상 발신자 번호가 쉽게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신자 번호 조작에 대한 정부 대처는 소걸음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초부터 공공기관의 전화번호를 사칭한 범죄가 급증했지만 9월에야 통신사업자들이 발신번호를 조작한 전화를 원천 차단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어 11월 이 개정안을 의결했고 12월 12일 뒤늦게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통신사업자로 하여금 발신자의 전화번호 변경으로 인한 이용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했다. 구체적으로는 변작되거나 거짓으로 표시된 발신자의 전화번호 차단 또는 정상적인 발신자의 전화번호로 정정해 수신인에게 송출하기 위한 조치와 국외에서 발신된 전화에 대해 국외발신 안내를 규정한 조치다.

이 법안은 그러나 이제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정파 싸움을 벌이다 뒤늦게 2월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지만 오는 16일 본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시한은 1주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여야 정치권이 4월 총선을 겨냥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어 이 같은 민생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요즘 계속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사탕발림 성격이 강하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시행되기까지는 5∼6개월이 더 걸린다고 한다. 사업자들의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진정 국민을 생각한다면 발신자 전화번호 조작을 사실상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이런 시급한 민생법안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

오종석 경제부장 jso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