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절대 권력에서 가카새끼까지 기사의 사진

지난 주말, 일선에서 정치부 기자로 같이 뛰던 친구들 몇 사람이 저녁을 함께 했다. 일부는 아직도 언론계에 남아 일하고, 일부는 다른 분야로 진출하여 활약하는 친구들이다. 누군가, 우리가 정치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직·간접으로 취재한 대통령만 몇 명인데 또 대통령 선거냐며 웃었다. 그래서 짚어봤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모두 8명이다.

경제적으로는 참으로 역동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정말 암울한 시절에 정치부 기자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가진 신적 존재로서 그 말씀이 헌법 위에 있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이 국회를 해산하고 싶으면 해산하고, 국회의원도 3분의 1을 지명하고, 라이벌인 대통령 후보를 납치 연금하는 것도 모자라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 치사케 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하고, 반정부는 곧 반국가·반체제로서 빨갱이가 돼야 했던 시절이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그런 환경에서 살았나 싶을 만큼 끔찍한 세월이었다.

대통령 8명을 거치는 동안

그 살벌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학생들이, 시민들이, 재야인사들이, 야당 지도자들이, 뜻있는 노동자들과 언론인들이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이 땅에도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쪽도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와 비교해보면 그런 측면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또 민주주의라는 게 언제까지나 미완성일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그래서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또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가 했던 걱정, 쿠데타에 의한 군사정권이 또 들어서지나 않을까 하는 그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은 됐다. 조금만 정부 시책에 반하는 소리를 하거나, 조금만 시대에 앞서가는 소리를 하여도 빨갱이로 몰려 운 좋으면 감옥이요 운 나쁘면 죽음을 면치 못하던 게 20∼30년 전인데 우리는 그동안에 진보 좌파적 정권을 두 차례나 선택했다. ‘농사가 흉년이다’ ‘불경기다’는 기사를 썼다가 정보기관에 불려가 그런 기사를 쓴 저의가 뭐냐고, 정부로부터 민심을 이반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고 치도곤을 당하던 게 멀지 않은 과거인데, 지금은 공직자까지도 현직 대통령을 “가카새끼” 운운하며 X싼 강아지 취급하듯 하고 있는 세상이 됐다. 대통령이라는 자들이 수천억원인지, 수조원인지 모를 돈을 긁어모으던 시절도 있었으나, 전당대회에서 국회의원 몇 명에게 300만원짜리 돈 봉투를 돌렸다고 국회의장직을 내놓고 곧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만큼 정치인들에 대한 도덕성의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

물론 정부 여당이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국정을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인다는, 그래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야당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뼈대 중 하나인 다수결 원칙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그런가하면, 서울시 등의 학생인권조례처럼 어린 학생들을 자유가 아닌 방종 내지 타락의 구렁텅이로 인도할 만큼 민주주의가 도를 넘는다는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

유신에서 참여민주주의로

우리는 이제 곧 국회의원을 새로 뽑고, 연말에는 새 대통령도 뽑게 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동안 집권자 내지 당 지도부가 독점했던 후보 공천권을 대부분 국민이 갖게 될 전망이다. 대통령 후보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만큼 (국민)참여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치라는 게 때로는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고 민주주의라는 게 일시적으로 후퇴하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정치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그래서 민주주의는 업그레이드된다. 올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우리는 또 새롭고 한 단계 높아진 정치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40년 가까이 직업으로서 정치를 구경한 기자의 믿음이다. 또 그것이 대한민국에 베풀어진 축복임에 틀림없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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