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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준동] 위기에 처한 축구협회

[데스크시각-김준동] 위기에 처한 축구협회 기사의 사진

국기(國技)나 다름없는 축구가 대한민국에 처음 선보인 것은 1882년이다. 당시 제물포(인천)에 상륙한 영국 해군들이 함선 위에서 볼을 찬 것이 유래다. 축구는 이후 근대식 학교를 통해 전국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축구의 인기를 등에 업고 1928년 조선심판협회가 국내 최초의 축구인 조직으로 등장하게 된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전신인 셈이다. 조선심판협회는 5년 후인 1933년 조선축구협회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초대 회장도 뽑으며 비로소 축구단체로서 구색을 갖추었다. 지금의 대한축구협회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이다.

그로부터 64년 후인 2012년 대한축구협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한 해 예산은 무려 1000억원에 달하고 직원만도 80여명에 이른다. 등록된 출입기자도 300명에 가깝다. 그래서 협회 측은 틈만 나면 “우리가 청와대 국회 등과 함께 4대 출입처에 속한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정부수립 직후 협회 예산이 미미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그럼 거대해진 규모만큼 협회의 현주소도 몰라보게 달라졌을까.

역대 수뇌부를 살펴보자. 1993년 1월 12일 정몽준 현 새누리당 의원이 제47대 회장에 당선된 뒤 협회는 현대 인맥을 중심으로 한 ‘정몽준 라인’으로 채워졌다. 정 회장은 2002 한·일 월드컵 유치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등에 업고 4회 연임에 성공하며 무려 16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했다. 정 회장은 지금도 명예회장으로 협회와 인연을 맺고 있다. 정 회장 재직 중에 조중연 현 회장은 이사(47대)-전무(49대)-부회장(50대)을 거쳤다. 정몽준 라인의 한 축인 조 회장은 2009년 1월 정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제51대 회장에 당선됐다. 내년 1월까지 임기를 감안하면 정몽준 라인이 20년 동안 협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비리 직원 퇴직 위로금 등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이 터진 것도 어찌 보면 장기 집권에서 오는 도덕 불감증에 기인한다. 조 회장은 지난 10일 내부 통신망을 통해 “남은 임기동안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져놓고 떠나는 것이 부족한 제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요, 예의”라며 내년 1월 차기회장 선거 불출마를 시사했다. 하지만 축구인들은 설령 조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더라도 정몽준 라인의 또 다른 인사가 차기 회장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장 투표권은 지방축구협회장 16명과 협회 산하 연맹 회장 8명에게 주어진다. 정 명예회장은 24표 중 약 17%의 지분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선거에서 정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막강한 것은 당연지사다. 정 명예회장이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3년이 흘렀지만 협회엔 여전히 그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인사가 정권 교체에 성공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지난해 말 조광래 감독의 전격 경질도 이런 맥락이다. 조 전 감독은 대표적인 야당 인사다. 지난 선거 때 조 회장의 반대편에 섰던 인물이다. 조 전 감독이 지난 2010년 7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될 때 축구계에서는 이런 말들이 있었다. “조 감독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는 다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것이다.” 결국 이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썩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정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개혁과 참신한 인사의 등용도 필수다. 그러나 현재의 협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거대해진 규모만큼 내실도 함께 성장한 협회를 기대해본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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