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正直의 치욕과 용기 기사의 사진

“죄 지은 자는 자기과오 고백해야… 정직은 사회를 정화시키는 원동력”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사퇴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입법부 수장으로, 집권 여당 대표로, 정부의 장관으로 70 평생을 화려하게(?) 살아왔는데, 마지막 모습은 좋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인 누구에게나 닥칠 개연적인 사실이다. 선거로 정치인이 된 사람치고 누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 그가 사태를 냉철하게 인식했다면, 오히려 그의 부도덕한 행위가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국회의장이라고 해서, 여당 전대와 관련된 사건이라고 해서, 아랫사람들이 입을 다문다고 해서 사실이 덮어지리라고 생각했을까? 이미 지난 일이지만 소설을 써 보자.

동료의원의 입을 통해 사건이 터졌다. 박 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측근들을 모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이후 검찰로 달려가 숨김없이 털어놓고, 국민에게 사죄하고, 국회의장직도 사퇴하고, 그리고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

픽션(fiction)으로는 가능하지만 팩트(fact)로서는 불가능한가? 왜 소설로만 가능할까? 첫째는 우리 사회는 정직해 보지 않아서 ‘정직’의 위대한 힘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은 대통령을 비롯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법과 시민들이 관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기피하고 되도록 숨기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하다. 왜 그럴까? 저지른 범죄가 엄청나기 때문이고, 그 자리에 있으면 그만한 과오쯤이야 사회가 묵인해 줄 것이라는 오만 때문이다. 이 두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면 치욕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두들 정직함으로 당하게 되는 ‘치욕’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과실’은 모른다.

부정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두려워하고, 그것으로 인한 치욕을 감당할 수 없을 때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길을 선택할 것이다. 첫째는 숨기는 것이다. 둘째는 대리자를 내세워 자기 죄과를 대신 감당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과오를 완전히 덮어버린다.

죄를 지은 자는 자기 과오를 법과 국민 앞에 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 가장 치욕적이면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박 전 의장은 그 기회를 놓쳤다. 이 사건이 검찰의 관용으로 유야무야 되리라고 생각했을까? 우리 현대사에서 서글픈 일은 대통령들의 퇴임 후 뒤끝이 아름답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으로 싸웠다는 대통령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식이나 친인척과 동지를 대신 감옥으로 보내고 자신은 면죄부를 받았다. 본인이 자기 과오를 고백하는 치욕과 용기를 가졌다면, 그들은 민주주의 탑 위에 도덕주의 탑을 더 쌓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치욕과 용기의 터전 위에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는 청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신했더라면 치욕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오래 기억됐을 것이다. 그 기억은 기념재단을 만들어 떠들썩하게 소란을 떠는 일보다 훨씬 값진 것으로 인간의 양심에 지워지지 않는 소리로 울렸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돈을 이길 수 있는 자질부터 배우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과연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스스로 성찰해 봐야 한다. 돈은 정직하다. 돈이 오갔다면 이유가 있다. 받기는 했으나 대가성은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구세군 자선냄비로 들어가는 돈 말고는 모든 돈은 대가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불법으로 남의 돈을 받은 것이 교묘하게 법의 심판을 피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안 된다.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최고의 덕목은 정직함이다. 그리고 치욕을 이길 용기이다. 정직하게 사는 것은 고독하고 때로는 치욕도 감당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자신과 사회를 정화해 나가는 폭풍과 같은 힘이 된다.

현길언 소설가 본질과현상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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