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영옥] 한·미 FTA, 선거용 카드 아니다 기사의 사진

총선이 다가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 국회의원 96명이 지난 8일 한·미 FTA 발효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미 대사관에 전달하면서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집권 후 FTA를 폐기하겠다는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이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역사 앞의 큰 죄’라는 표현으로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자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박 위원장을 여권 대권 주자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무지의 소치이자 몰역사적인 생각을 지닌 인물이라고 폄하하면서 한·미 FTA 문제가 다가올 선거의 핵심 논쟁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장개방은 세계적인 추세

그러나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는 야당의 입지는 매우 좁아 보인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친노세력이 대거 포진한 민주당의 주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입안하고 추진한 대통령이며,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총리로서 한·미 FTA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한·미 FTA는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 일류로 끌어올리는 성장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 와서 야당이 제기하는 재협상 요구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엄연히 정부가 있는데도 적법한 외교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제 계약에 대한 서한을 직접 상대 대사관에 제출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렵고, 국가 망신을 자초한 행위일 뿐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야당은 2007년 체결된 한·미 FTA와 현재의 그것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재협상을 요구하는 10개 항목 중 9개는 2007년에 체결된 내용 그대로여서 설득력이 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보니, 야당 측의 한·미 FTA 폐기 주장은 정치적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國益 외면하면 심판 받아야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한·미 FTA를 폐기하게 된다면 양국 관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신인도 하락과 국격의 훼손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 자유무역의 확산과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세계 추세이다. 더구나 우리는 가진 밑천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정도로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이다. 2011년에 무역 1조 달러라는 거대한 업적을 이루었고,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2020년 무역 2조 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FTA, 그중에서도 미국과의 FTA는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전략에 해당된다. 이때문에 일본 중국 등 이웃나라들이 한·미 FTA 체결을 부러워하며 이에 뒤질세라 세계 각국과의 FTA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당에 자신들이 시작해서 만들어 놓은 국제 계약을 걷어차 듯 일방적으로 상대방 대사관에 발효 중지 서안을 던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효 중인 FTA 297건 가운데 어느 한 나라의 일방적인 요구로 협정이 파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다.

‘몰상식과 무지’는 법과 계약을 부정하고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는 민주당에 잘 어울린다. 국제조약을 식은 죽 먹듯이 엎어버리는 짓은 북한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다. 하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관계임을 자랑했던 좌파정권에 뿌리를 둔 민주당이고 보면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번지고 있는 ‘닥치고’ 폐기 식의 접근이 국제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야당 주장은 근원적으로 자기부정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정권만 잡을 수 있다면 국가경제나 발전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무책임의 극치이다. 한마디로 국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당위성을 가진 것도 아닌,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국익을 외면하는 정권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한·미 FTA는 경제적 문제이지 선거용 카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유영옥 경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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