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박의경] 선거의 해에 지켜야 할 가치 기사의 사진

“중학교 영어는 수준이 많이 높아지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언젠가 보았던 중학생 영어 학습지 광고 내용이다. 아이 엄마로 분장한 모델이 나와 “그러면 우리 아이는 5학년부터”라는 말로 광고가 끝난다.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이유는 이 사회의 한술 더 뜨는 풍조 탓일 것이다.

이 광고에서 필자는 한술 더 뜨는 우리 사회의 단상을 본다. 사회 변화를 주장하면서도 시류를 그냥 따라갈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한술 더 뜨게 되면, 변화나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앞만 보고 그 한 단계 앞을 생각해야 하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앞이란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그 현상의 바로 앞이기에 ‘미래지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현실의 문제점은 도외시한 채 현실 안주를 부채질하고,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묵살시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앞’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는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경쟁사회의 속성에 기인한 바 크다. 실상 경쟁은 과정 속에서 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한술 더 뜨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경쟁의 출발선에서부터 경쟁자보다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기 위한 투쟁으로 경쟁이 변한다. 여기에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고, 도덕과 윤리는 결과가 대신 답하게 되는 왜곡된 사회로 진행한다. 이제 경쟁은 투쟁, 곧 전쟁으로 변하고, 과정은 결과에 묻혀 버린다. 경쟁을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지 않고 과정의 중요성을 보지 않다 보니, 결과를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건을 만들어 놓겠다는 식이다.

인위적인 조건의 형성은 인간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 진정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자생적으로 경쟁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습득해야 한다. 인위적인 조건의 형성으로 경쟁력이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필요한 것을 해야 할 시간에 필요한 것을 하지 않는 좋지 않은 습성을 형성시킨다.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의 특징은 창의력과 참신성이다. 창의력과 참신성은 생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초등학교의 것을, 중학교에서는 중학교 실력을 갖춰 주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 형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내 것을 내 것으로,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능력이 아닐까. 지금 내 자리에서 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영원히 내 것을 가질 수 없다. 언제나 남의 것만 쫓다가 인생을 마치는 허무한 삶이 되어 버린다.

요즘 ‘기본과 원칙을 지키자’라는 명제가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기본과 원칙은 바로 이 순간부터 지켜져야 한다. 대한민국이 21세기를 지나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있는 것들부터 거두어들여야 한다. 지금의 곡식을 거두기에 앞서 미래의 알곡부터 미리 챙기고자 한다면, 지금의 곡식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자.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는 곧 미래의 원인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가치가 다양한 곳에서 자리 잡고, 그러한 다원성이 곳곳에서 움직이는 21세기 열린사회를 위해 한술 더 뜨는 사회의 흐름이 잡혀야 한다. 한술 더 뜨는 사회는 있는 자, 가진 자, 기득권자 중심으로 움직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 판단으로 내 시간에 움직이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획일적 사회에서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소수자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제때 제 것을 가지고 행동하는 기본과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선거의 해인 올해 이미 가진 것을 헤아려보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작지만 큰’ 결과를 기대해 본다.

박의경 전남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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