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건축-‘은평구립도서관’] 비탈에 선 책의 성채 기사의 사진

선진국의 공공문화시설은 최고의 건축을 지향한다. 남는 땅이 아니라 가장 목 좋은 곳에 짓는다. 인류의 지식을 전승하는 도서관, 문화유산을 간직하는 박물관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서다. 파리 국립도서관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보라. 산 속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멋대가리 없는 국립중앙도서관 건물과 다르다.

서울 불광동에 자리한 은평구립도서관은 입지가 후미지기로 유명하지만 건축은 기록할 만하다. 지하철 연신내역 사거리에서 북한산 쪽으로 돌아 좁은 골목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면 눈 앞에 불쑥 나타나는 콘크리트 건물. 이런 곳에 공공도서관이 들어서다니!

건축가 곽재환은 이 비탈져 버려진 땅에 신전처럼 수직으로 솟은 기둥을 세워 고고한 책의 성채를 만들었다. 산자락에 이 정도의 공간을 배치한 재능이 놀랍고, 지자체가 이 정도의 건축을 발주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다만 1999년에 지은 건물 치고 많이 지저분한 걸 보니 건축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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