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양영채] 회남재 안내판의 공공문장 기사의 사진

경남 하동의 악양은 뒤로는 지리산 자락,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진 아름다운 땅이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풍광과 멋을 찾아 이곳에 눌러앉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농촌 공동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악양에서 청학동 도인촌으로 유명한 청암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산중턱을 가파르게 깎아 만든 길이다. 고개 정상에 서면 악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의 칼 찬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이 산청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중 악양이 좋다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렸다고 해서 회남(回南)재란 이름이 붙었다.

고개에는 나무로 만든 안내판이 서있다. 플라스틱이나 쇠로 된 게 아니라 나뭇결이 살아 있는 원목에 글을 돋을새김 했으니 근사하다. 주변 풍광과 썩 잘 어울린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였다. 맞춤법이 맞지 않거나 설명이 틀린 부분이 있었다. 한 문장 안에 주어 술어가 여럿 있어 설명이 간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이 안내판을 본 우리글진흥원 회원이 몇 가지 지적사항을 적어 하동군청으로 보냈다.

공공기관의 잘못된 글을 바로잡는 것이 우리 단체의 일이다. 광명시청에는 ‘주민의 편이를 위하여’가 아니라 ‘주민 편의를 위하여’가 맞다고 알렸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는 등산로 입구에 적힌 ‘안전수칙’과 ‘유의사항’의 차이를 설명했다. 서울 중구청에는 ‘방송안내를 청취’하지 말고 ‘안내방송을 청취’하라고 했다.

사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공공문장 가운데 온전한 게 별로 없다. 띄어쓰기 오류는 다반사고 문장 자체가 뒤죽박죽이다. 엉뚱한 용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주어 술어가 맞지 않는 문장도 허다하다. 읽는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개가 되는 ‘애완견 공원출입 안내문’까지 등장했다.

글로벌을 외치는 서울시도 예외가 아니다. 동네마다 붙어 있는 눈치우기 안내문은 오늘밤 내린 눈을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치우라고 한다. 그러나 ‘다음 날’ 대신 ‘다음날’로 표기하는 바람에 눈을 다음에 천천히 치우라는 안내문이 됐다. ‘다음 날’은 특정한 날로부터 하루가 지난 날이지만 ‘다음날’은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어떤 날’이기 때문이다. 수도 서울이 이럴진대 여타 자치단체는 굳이 더 들먹일 나위가 없다.

오염되고 훼손된 글을 지적해주면 답변이 금방 온다. 감사하고 앞으로 신경 쓰겠단다. 보이지는 않지만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기계적이고 의례적인 답변이다.

하동군청은 달랐다. 바로잡겠다고 연락이 금방 왔다. 번거롭고 부담스러워 재제작을 예상 못한 터였다. 사업비를 다시 배정하고 감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못하고 예산을 두 번씩이나 들이냐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안내판은 원목으로 만들어 꽤 비싼 제품이 아닌가.

우리글진흥원은 비영리 사단법인이지만 서비스비용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수익금은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층 무료 글지원 서비스에 사용된다. 하동군은 회남재뿐 아니라 ‘11천송’에 대한 안내문 감수도 요청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11천송’은 멀리서는 한 그루 당당한 소나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11그루가 옹기종기 서 있는 소나무군이다. 관광객을 위해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던 중이라고 했다.

‘찾아오는 하동’을 만드는 비결이 여기 있었다. 관광객에게 보고 듣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주겠다는 열정으로 안내판 하나도 소홀히 세워두지 않았다. 엉터리 글로도 뜻은 대충 전달된다. 개떡같이 적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글 한 줄이 자치단체의 시책을 홍보하고 품격을 높이는 일임을 단체장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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