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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이동훈] 권력과 암살

[데스크시각-이동훈] 권력과 암살 기사의 사진

정치 지도자만큼 죽음, 특히 암살(暗殺)에 가까이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절대권력자 일수록 암살 공포도 심하다. 고대 로마시대, 라이벌 폼페이우스를 물리친 뒤 종신 독재관에 취임했다 심복인 브루투스에게 죽임을 당한 줄리어스 시저를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원로원은 시저가 왕정으로 복귀해 공화정을 해칠 우려를 했다며 암살 이유를 댔다.

지도자 암살의 정당성을 설파한 사람으로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그는 국가 지도자를 이타적 지배자와 폭군으로 구분하고 폭군을 악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이를 근거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지배자 암살을 간접적으로 미화하는 경우도 흔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암살을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라고 했다. 권력집단과 반대파간의 무장투쟁은 많은 희생이 따르는 만큼 암살이 최소 희생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제적인 수단으로까지 꼽히기도 한다.

권력집단에서 일어나는 암살이 영화나 소설 등 스릴러물의 단골이 되는 것도 그만큼 긴장감 넘치는 소재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화제 드라마 ‘해를 품은 달’도 예외는 아니다. 17회가 방영된 29일분에 자객 10여명이 성종과 그의 옛 세자빈인 연우를 살해하려 들이닥치지만 그의 연적인 양명과 힘을 합해 단숨에 물리친다. 다만 남녀간 삼각관계에 기초한 ‘기사도 풍’이 과도하고 결말이 뻔해 맛은 떨어진다.

허구에 기초한 드라마보다는 요즘 선거를 둘러싸고 부쩍 많이 등장하는 암살관련 외신기사가 생동감을 더한다. 암살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잃은 미국일 것이다. 최근 미국내 무슬림 지도자가 인종문제를 거론할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암살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나, 미국내 유대계 신문이 이란문제 해결을 위해 오바마를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알 수 있듯 오바마는 암살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지도자임엔 틀림없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선두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이어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에게 백악관 경호팀이 따라붙는 것도 슈퍼파워 미국에 암살 위협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일 것이다.

4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러시아에서 며칠 전 느닷없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암살 계획이 관영TV에 보도됐다. 요지는 지난 1월말 체포된 러시아 남부 체첸 출신의 테러범들이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체첸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의 지시에 따라 푸틴 총리를 암살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하필 선거를 앞두고 1개월이나 지난 사건을 발표한 데 대해 타임 등 서방언론과 러시아 야당은 푸틴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정보기관이 암살 사건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한다. 배후로 언급된 우마로프는 2010년과 2011년 모스크바 시민 수십명을 테러로 숨지게 한 체첸 반군 지도자인데다 푸틴이 2000년 대선에서도 이용했던 터라 유권자들 마음속에 그런 인물 이미지가 되살아나도록 하는데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12월 총선 부정시비로 수세에 몰린 푸틴이 암살위협을 반전의 소재로 삼으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실제로 29일 선거운동원들 앞에서 향후 반대자들이 유력 야당후보를 암살함으로써 책임을 당국에 돌릴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경고함으로써 공포심리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유권자들은 올해 내내 이어질 각국 선거에서 벌어질 이같은 푸틴류의 이벤트에 눈을 부릅떠야할지도 모르겠다. 권력집단에서 토해내는 사건에 대한 자작극 여부판별은 유권자들 몫이기 때문이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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