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정의 기사의 사진

성경의 인물 가운데 욥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도 없다. 그는 동방의 의인이었으나 하루아침에 가족과 재산을 잃고 악성 피부병에 걸린 처참한 신세로 전락했다가 다시 동방 최대의 부자가 된 사람이다. 친구들은 그에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며 비아냥거렸고, 사랑하는 아내는 그를 버리고 떠났다. 사람들은 욥에게 “너의 잘못으로 하나님께 심판받는다”고 놀렸다. 그 말을 들은 욥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하나님께 항의했으나 하나님은 욥의 인간적인 지혜의 한계를 지적한다.

드라마틱한 욥의 인생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중략). 바다가 그 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중략)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욥 38장)

하나님이 욥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지혜론은 사람의 운명은 자기행동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욥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성공하게 하는 확실한 길,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준다고 믿었던 전통 지혜론의 ‘세계상’이 불충분하고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이성과 지성으로 온전히 정의롭고 경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 지혜론의 인과응보는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욥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억울한 일이고 불의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비록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여 잠시 욥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지만, 그것까지도 정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이 관점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럼 하나님은 예상 불가능한 분인가? 아무렇게나 하시는 분인가?” 전통 지혜론에 등장하는 ‘예상 가능한’ 하나님 대신에 욥기에 등장한 하나님은 예상 불가능한 하나님, 아무렇게나 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창조주의 높은 지혜를 지닌 하나님이다.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피조세계에서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종해야 된다는 믿음을 욥기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정치권 노동계 언론계 등 곳곳에서 불평과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개인과 조직마다 자기의 이익에 따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공격한다. 저마다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은 옳고 정의롭다고 외친다. 하나님의 정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몰아 죽이는 게 아니다.

다른 생각도 보듬어야

하나님의 정의에는 관용과 사랑과 회복과 생명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 다른 생각과 지성을 죽이는 것은 불의다. 가치 혼란시대에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중심이자 핵심인 주기도문을 깊이 묵상해 보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오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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