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 울라” 기사의 사진

“대통령이 어려운 임기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올 때 그를 사뿐히 받아줄 사람은?”

우리나라 대통령 단임제의 고질적 악순환이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임기 말의 시련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 실체가 불분명한 여러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4·11총선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몰락하고 친이계도 대거 낙천되고 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효재 청와대 전 정무수석비서관, 김두우 전 홍보수석 등 최측근들은 비리 연루 혐의로 이미 이 대통령을 떠나갔다.

그래도 현직 대통령인데 정계에 그의 몫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삭풍 앞에서 방벽이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대통령은 12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도 몇 사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이계를 잃고 이렇게 말하는 이 대통령의 속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떠나간 사람들이 측근만은 아닌 듯하다. 장로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절대적 확신을 보냈던 기독교계 상당수 지도자들과의 관계가 예전과 같은지 궁금하다. ‘고소영 내각’과 같은 편향성과는 분명히 결별해야 하지만 교계의 지지자들은 언제까지나 말없는 기도의 동행자이자 믿음의 친구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7년 언론인 존 드레이퍼와 나눈 대담집 ‘Dead Certain(절대적 확신)’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이라크 침공의 이유가 됐던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임기 말의 부시 대통령에게 드레이퍼가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으로서 기대고 울 만한 사람이 있는가.”

부시 대통령이 답한다.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 나는 당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내일도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토로는 이어진다. “대통령 직이라는 임무 자체만을 놓고 보면 자기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기 연민은 대통령에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말에서 눈길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어깨에 기댄다’는 표현이다. 이 말은 요한복음 13장과 21장 유월절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 요한이 예수의 품에 기댄 채(leaning on Jesus’s bosom, KJV) 질문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요한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신임은 열두 제자 중에서도 각별했다. 요한이 예수에게 기대거나 품에 안겨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하거니와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은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는 요한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바꿔치기해 기묘한 추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요한에 대한 예수의 신뢰는 육신의 여러 동생들이 있었음에도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직전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며, 부활한 예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늙어서는 남들이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요한을 가리켜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요한에 대한 사랑을 궁금해 한 것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이 요한의 총명함과 거리낌 없는 소통 능력이다. 예수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말씀을 듣는 착하고 순진한 제자, 의탁할 데 없는 어머니를 맡기는 스승. 이런 신뢰와 소통의 모습이야말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 더욱 간직해야 할 덕목일 것이다.

공중곡예사가 어려운 곡예를 마칠 때 그를 받아주는 캐처(catcher)가 반드시 필요하다. 곡예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곡예를 마치고 팔을 쭉 펼친 상태로 몸을 던져 날아갈 때 무대 뒤편에서 그를 받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해줄 사람. 대통령이 힘든 임기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그를 사뿐히 받아줄 숨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래도 교계의 형제들일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 필요하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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