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조전혁의 유쾌한 승복 기사의 사진

“설사 개죽음으로 결론 난다 해도 앉아서 박 비대위원장에게 처형당하고 정치를 마감할 수 없다”(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을 때 마피아의 잣대를 탓하거나 도부수에게 도생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최병국 의원). 비장감에다 살벌함까지 겹친 언설들이다. 이게 한국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공천 탈락자들은 다 주저앉았다. 김무성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하자 그간 동요하던 낙천자들도 하나둘 당 잔류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진 전 장관, 안상수 전 대표, 이사철 의원 등이 지난 15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불출마’의 뜻을 밝혔다.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미루어 낙천의 충격과 서운함이 크긴 컸던 모양이다.

눈물 왜 그렇게 흔한지

나꼼수의 집요한 ‘1억 피부샵’, ‘기소청탁’ 공격에 시달리던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8일, 그리고 친박계 이경재 의원은 13일 불출마와 백의종군을 택했다. ‘도부수’ 운운하며 탈당했던 최병국 의원도 19일 결국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물론 기어이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공천 탈락자도 없지 않다. 전여옥 의원의 경우 지금은 국민생각 대변인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다. 유정현 의원은 18일 “공천을 두고 몇 지역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한 사람의 정치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다”면서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런 예는 더 많겠지만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겠다.

눌러앉기로 한 측이나 나가기로 한 측이나 국회의원직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보인다. 임기 동안 그 자리에서 책무를 다하고, 떠날 때에 이르러 가벼이 털고 일어나는 사람은 정말이지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 사람, 말 그대로 ‘흔쾌하게’, 그렇다기보다는 ‘유쾌하게’ 승복하는 사람이 있다.

“제가 불출마 선언하고 몇 시간 뒤 무성이 형(김무성 의원)이 하니까, 고래가 나오면 새우는 묻히는 것처럼 전 묻혔지예.” 새누리당 조전혁 의원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지난 12일 탈락 소식을 듣고 15분 만에 승복 선언을 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무성이 형’한테만 쏠렸던 것이다. 그래도 기분 언짢아하는 뉘앙스는 전혀 없다. 천진스럽게 들리는 불평(?)이다.

살맛 나게 해주는 사람

“닥쳐온 힘겨운 상황을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참고로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무성이 형’처럼 비장한 표현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심사 시스템도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동안 역사를 봐도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겸허하게 수용하고자 한다.” 전교조 명단을 공개했다가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 하면서 빚만 잔뜩 늘려놓은 사람이 공천 탈락 소감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오히려 당 비대위와 공추위 역성을 들어줬다. “자기가 되면 잘 된 공천이고, 자기가 안 되면 잘못된 공천이라는 것도 우습죠.” 그런 말도 했다.

가끔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들을 수 있어서 세상은 살맛이 나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 조소의 감정도 누그러진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이 주는 느낌은 별로다. 추구하는 이념,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도록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조 의원의 공천 탈락이 주는 인상은 새누리당의 ‘짐 덜기’ 같은데 오해일까? 역대 보수정당이 준 인상은 부패 오만 나태 비겁 회피 등이다. 새누리당은 그 중 몇 가지에서 자유로워졌는가?

더 이해 못할 것은 대부분의 정당이 움켜쥐고 있는 이른바 ‘공천권’이다. 거대한 권력기관으로서의 중앙당체제를 고집하면서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돼 있다고 아우성이다.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면 그 책임의 3분의 1은 대통령에게, 그리고 3분의 2는 정당에 있다. 아닌가?

그래도 조 의원이 정치현장에서 유쾌하게 퇴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위안을 얻는다. 훌륭한 교수님으로 더 훌륭한 미래의 주인공들을 길러주기 기대한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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