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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한민수] 與野, 오만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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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996년 15대 때부터 국회의원 선거를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이번 19대 4·11 총선까지 합하면 16년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총선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17대를 얘기하곤 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이뤄진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오만(傲慢)’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여실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은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오만이 빚은 합작품이었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려 정권을 중단시키겠다는 오만이었다. 국민들에 의해 강한 탄핵 역풍이 불자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이 속한 열린우리당이 오만해졌다.

부산에서도 1∼2석을 제외하고 석권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곧바로 ‘노인 폄훼 발언’이 터졌고 열린우리당 돌풍은 제동이 걸렸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오만을 더 경계하며 여당에 152석을 선물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미스터리가 있다. 왜 과반의 열린우리당은 이후 맥없이 무너지며 정권까지 상실했는가 하는 점이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때 집권당 수뇌부는 너무 오만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법, 사학법, 신문법 등 이른바 개혁입법을 한꺼번에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덤볐다. 결국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8년이 흘러 4·11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는 다시 오만이 판을 치고 있다. 1·15 전당대회를 거쳐 몸집을 불린 민주통합당은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고 했다. 지도부는 물론 하급 당직자들도 원내 1당을 넘어 과반은 충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오만의 결과는 가혹하다. 선거가 치러지기도 전에 국민은 등을 돌렸고 당내에서도 “130석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만의 늪에 빠져 원칙도 감동도 없는 공천을 남발한 탓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새누리당의 오만한 작태가 국민에 걸려들었다. 텃밭이라고 해서 역사성과 도덕성, 개인적 소양이 부족한 후보들을 마구 공천한 결과 부랴부랴 공천을 취소하며 부산을 떨고 있다. 판세가 눈에 띠게 호전되자 그간 숨죽였던 친박근혜계를 비롯한 주류 측의 기득권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국민들에게는 당연히 오만하게 비쳐졌다.

오죽하면 비상대책위원들이 “지지율이 좀 올라갔다고 오만에 빠져 제 무덤을 파고 있다”고 탄식했겠는가. 여기에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야권 후보 단일화로 기세를 올리던 와중에 터진 ‘이정희발(發) 문자메시지 조작 파문’도 오만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번 총선은 어느 당이 오만을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전국적인 이슈가 부각되지 않는 선거일수록 특히 그렇다.

그럼 여야 정당이 국민들의 오만 잣대에 걸려들지 않을 묘수는 뭘까. 말실수를 줄인다거나 아예 논쟁거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식은 하책(下策)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며 상대방을 향해 무차별적 폭로를 가하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5대에 걸쳐 총선을 경험한 소견으로 보면 결국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상책 중 상책이다. 여야 지도부가 눈만 뜨면 입에 달고 사는 그 눈높이다. 공천자가 확정된 이상 이들이 지역구에서 공정한 선거전을 펼치는지 철저히 감독하고, 국민들 눈에 딱 맞는 공약을 내놓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달 11일 선거가 치러지는 순간까지 어느 당이 국민들의 오만 평가에 걸려 허우적거릴지를 보는 것도 다소 고약하기는 하지만 관전 포인트라 할만하다.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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