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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박정태] 불법사찰과 水落石出

[데스크시각-박정태] 불법사찰과 水落石出 기사의 사진

소동파는 1082년 7월 적벽에 놀러가 ‘적벽부’를 남겼다. 소동파는 그해 11월 그곳에서 다시 뱃놀이를 한다. 같은 장소임에도 느낌이 달랐다. 깎아지른 벼랑은 줄어든 물 때문에 천 척이나 높아 보였다. 물속에 잠겼던 바위가 수면 위로 삐죽 솟았다. 딴 곳에 온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다 “고작 날짜가 얼마나 지났다고, 강산을 알아볼 수조차 없구나!” 하고 탄식했다. 소동파는 달라진 경물을 이렇게 묘사했다. 수락석출(水落石出)! ‘물이 줄자 바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후대에는 흑막이 걷혀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는 의미로 쓴다.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가 출간한 ‘일침(一針)’(김영사)에 담은 글을 발췌한 것이다. ‘일침’은 고전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4자성어 100편의 글로 세상을 통찰하고 있어 음미할 만하다. 수락석출을 예로 든 이유는 정국 상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사건이 그렇다. 그대로 묻혀버릴 뻔했던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다시 나왔고 물이 점점 빠지면서 그 실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폭로자’의 녹취파일 공개에 놀라 ‘깃털’이 ‘몸통’이라고 우기면서 청와대 개입이 확인됐고, 입막음용으로 1억원이 넘는 자금이 오간 사실 등이 까발려졌다. 그 돈을 ‘십시일반’ 모으거나 금일봉을 전달하거나 취업을 알선한 인물로는 엘리트 공무원에서부터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민정수석실·대통령실장실 전현직 고위 공직자까지 등장한다. 범죄 은폐를 위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 곳곳은 물론이고 검찰도 공모한 의혹마저 제기된다. 국가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국기문란 범죄를 저지른 격이다.

이러니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를 도청하려던 사건과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전개 양태가 흡사하다. 닮은꼴은 이렇다. 첫째는 권력 남용, 둘째는 증거 인멸, 셋째는 정권과 관계없다는 새빨간 거짓말, 넷째는 녹취파일 공개다. 그것으로 결정타를 맞은 닉슨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므로 어디까지 형체가 드러날지 모른다. 여기서 두 사건의 흐름이 다른 건 딱 하나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특별검사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 반면 우리 검찰은 고의인지 무능인지 사건을 ‘덮었다’가 떼밀리듯 재수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지금 베일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의혹의 시선이 권부를 향해 가고 있다. 현재까지의 증거와 정황상 분명히 권력 핵심부가 관여했을 것으로 국민들은 짐작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루자들이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사명감을 갖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고 외려 호통을 칠 수는 없다. 윗선이 뒤를 봐준다는 생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진실은 묻어둘 수 없다. 자칭 ‘몸통’에 대해 검찰이 오늘 소환을 통보했다. 각본에 따라 검찰이 움직인다는 의심도 있으나 일단 지켜볼 수밖에. 만일 부실 수사 주체인 검찰이 또다시 진짜 몸통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서라도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파헤쳐야 한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우습게 본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일침’의 ‘허정무위(虛靜無爲)’ 편에는 우리가 곱씹어 볼 이야기가 나온다. “‘재물은 썩은 흙이요, 관직은 더러운 냄새다. 탐욕스럽고 더러운 방법으로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자는 모두 오래 못 간다’-무소불위의 권력을 믿고 세상을 농단하던 자들의 말로는 늘 비참했다. 지금까지 제 눈으로 확인한 것만도 수없이 많았을 텐데 자신만은 예외일 것으로 믿다가 뒤늦게 땅을 친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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