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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송병구] 가장 비싼 십자가는 얼마입니까?

[삶의 향기-송병구] 가장 비싼 십자가는 얼마입니까? 기사의 사진

경기도 김포 하사리 들녘을 달리는 차 안에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봄기운을 느낀다. 올해는 유난히 봄이 오는 길목이 변덕스럽다. 애기봉에서 가까운 그 동네를 찾아간 이유는 오는 성금요일 기도일에 쓸 십자가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 십자가는 단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 참석자들이 차례로 나와서 직접 못을 박으며 현장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미뤄 둔 십자가갤러리를 손보기 위해 모처럼 새벽부터 떠난 길이었다. 강화에서 살던 김명원 권사는 1년 전 조용한 곳에서 십자가 만드는 일에 전념하려고 하사리 들판 한가운데 울타리를 치고 빌립공방을 열었다. 공방이라야 비닐하우스 2개를 개조한 것으로 하나는 전시실이고, 또 하나는 나무 먼지로 가득한 작업 공간이다. 마당 사방에는 야산에서 간벌해 온 다릅나무 가지들, 제멋대로 생긴 붉은 참죽나무 더미, 불난 집에서 건져온 그을음이 잔뜩 묻은 나무기둥들, 문 닫은 절에서 구했다는 단청, 빛이 바랜 옛 나무들로 그득하다. 언뜻 보기에 제대로 된 미끈한 나무들은 단 한 재도 없었다.

일용할 양식이 된 십자가들

그는 작업대 옆에 수북이 쌓여 있는 다릅나무 껍질을 가리키면서 얼마 전 주문받은 십자가 200개를 만드느라 분주하다고 웃었다. 한 달 동안 따듯한 보일러 방에서 함께 자면서 제대로 재료를 말렸다고 한다. 허드렛나무처럼 흔한 다릅나무일망정 솜씨 좋은 그의 손에 닿으니 경건한 십자가로 다시 살아났다.

김 권사는 열네 살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목수 일을 배웠다. 벌써 40년 세월 동안 소목 장인으로 살았다. 전문분야는 전통가구인데 반닫이와 경상 따위 고가구점에서 볼 수 있는 골동품들이 그의 장기다. 십자가에만 전념하는 지금도 잘 건조한 옛 나무만 보면 여전히 일 욕심이 난다고 한다. 좋은 시절은 IMF를 만나고 끝났다. 한때 절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도 했다. 여신상을 만들던 작업장에서 일하던 자신이 이젠 십자가만 만든다고 스스로 놀라워한다.

김 권사는 5년 전부터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스무 날은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열흘은 십자가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365일 십자가만 만들 궁리를 한다. 그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젠 먹고 살기 위한 생활방편이 되었다. 그의 가난한 마음이 더욱 솔직하고 경건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가 만드는 십자가들은 일용할 양식이었다. 늦게 본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야 하고, 휴대전화 요금도 내야 하고, 헌 나무도 사들여야 한다. 문제는 십자가를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일이 별로 돈이 안 된다는 점이다.

날개 돋친 듯 팔릴 그 봄날

십자가전시회를 열 때마다 늘 받는 질문이 있다. 제일 비싼 것이 어느 것이냐 혹은 가장 비싼 것은 얼마쯤 하느냐 따위다. 아마 가장 큰 관심사일 것이다. 기자들은 전시회 소식을 전하면서 십자가 수집에 사재를 털었다는 식의 과장된 스토리를 감초처럼 끼워 넣었다. 밤늦게까지 십자가전시실에서 십자가들을 바꿔 달면서 나 역시 가장 비싼 십자가를 찾아보았다.

크고 작은 교회 강단에 김 권사가 손수 빚은 솜씨 있는 십자가가 높이 걸리고, 집집마다 거실 흰 벽에 맵시 있는 십자가가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그만큼 십자가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릴 거라는 기막힌 뉴스가 아닌가? 그래서 평생 십자가 만들기를 고집하는 김 권사가 큰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한낱 봄꿈일까?

송병구 색동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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