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선거가 실종된 선거판 기사의 사진

‘선거는 민주 국민의 축제’라고 하지만 그게 빈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 말고 ‘주권재민’의 원리를 형식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아마 국민들은 이 요란스럽고 지저분한 선거를 내버리자고 했을 것이다.

국민대표기관인 국회를 구성할 300명의 의원을 결정할 총선의 의의와 의미와 결과가 온통 ‘민간인 사찰’에 달린 분위기다. 저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폭로’라는 수단 하나에 의지해 의원직을 차지하고 패거리(미안하지만 달리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의 덩치를 키우겠다고 아우성이다. 독한 말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품위 체통 같은 건 팽개친 지 오래다.

폭로, 그 ‘직효성’의 유혹

하긴 폭로보다 더 경제적이고 효과 빠른 방법이 달리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말하자면 ‘값싼 직효약’이다. 국회의원 선거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부를 가른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누군들 ‘폭로의 매력’에 빠지지 않으랴. 게다가 두 번 세 번 우려먹을 수 있는 게 또 폭로라는 ‘상비약’이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인가 하는 데서 ‘민간인’에 대해 ‘불법사찰’을 자행했다고 해서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갔다. 그게 2009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문제가 다시 총선 판세를 뒤흔들고 있다.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했다는 사람이 추가 폭로를 했고, 특히 민주통합당이 이를 빌미로 총공세를 편 덕분에 선거 이슈의 원포인트화가 이뤄진 것이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이런 다이내믹한 구경거리가 또 있을까. KBS 새 노조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문건이라는 것을 무더기로 공개했다. 무려 2619건의 사찰 내용이다. 노조 측의 파업 채널 리셋 KBS뉴스9은 이를 보도하며 워터게이트 장본인 리처드 닉슨과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번갈아 내보냈고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를 운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문건의 80% 이상이 노무현 정부 때의 총리실 조사심의관실 것이라는 청와대 측의 해명이 나왔다. “구라도 좀 격조 있게 까라”는 아주 ‘격조 없는’ 표현으로 반박했던 노조 측은 뒤늦게라도 청와대 측의 발표 내용을 시인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잠시 주춤하다가 새로운 논리(?)로 무장하고 반격에 나섰다. ‘청와대의 물타기’ ‘본질은 불법 민간인 사찰’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자료를 근거로 말했건 어쨌건 내 말은 옳고, 상대의 해명은 본질을 흐리려는 물타기라는 주장이다. 전 정부 때의 사찰에 불법성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그것도 조사를 해봐야 아는 일 아닐까?

지식인들의 부추기기

그들만의 폭로전이다. 필부들은 그저 멀거니 구경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권자 된 권리주장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을 거든다. 선거의 주체는 유권자다. 정당과 후보는 말하자면 선수들이다.

국민이 마련해서 제공해주고 있는 경기장에 나와 룰을 준수하며, 나라와 국민의 체통을 생각해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이 경기 참여자들의 본분이고 책무다. 필드에서 혹은 트랙에서 난장판을 벌여 국민의 잔치판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아귀다툼에 열심히 추임새를 넣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화려한 지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추임새, 부추기기가 더 요란스럽고 험하다. 많이 아는 사람들일수록 내 편 네 편 가르기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똑똑하다는 것이 민주정치의 짐이 되고 그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해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즈음이다. 우리는 지금 지식이 독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그 효과가 입증될수록 더 크고 더 무모한 폭로가 준비된다. 폭로가 선거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선거는 폭로 경연장이 되고 만다. 다음 선거에서는 더 화려한 폭로의 제전이 준비될 것이다. 정치권력, 국가의 공직은 게걸스런 폭로자, 폭로 교사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마련이고…. 선거판에서 선거를 찾아야 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나이에 판단의 미아(迷兒) 신세가 되다니!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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