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스스로의 실력과 빛이 있는 사람 기사의 사진

“고통을 이기고 진지하게 실력을 축적한 사람은 자기의 이야기를 할 줄 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남을 탓하는 비방·비판의 사회가 돼버린 것 같다. 남을 꼬집는 사람이 참 많다. 대중을 상대로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을 보면 두 개의 유형을 보여준다. 하나는 자신의 내공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비교 우위적 입장에 서려는 사람이다.

비판은 하나의 현상을 정확하게 보고 그것을 다른 것과 비교 고찰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높은 수준의 지적 성찰을 요구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잘못된 것과 잘된 것, 버려야 할 것과 선택해야 할 것을 골라낸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남을 아프게 하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비해 자신의 콘텐츠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진솔하기는 하지만 손쉽게 눈길을 끌기 어렵다. 우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그런 말은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을 쉽게 비판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자기가 경험한 고통에서 얻은 값진 내용이나 오랫동안의 진지한 학습에서 얻어낸 결과를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리 말이 서툴지라도 듣는 이를 울리는 것이 있다.

비판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이겨내거나 진지한 공부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그 대신 손쉽게 세상을 비판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비판은 맹독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비판적 습관이 들면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고 감당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도 남을 힐난하려고 든다.

그런 비판자들은 흔히 자신을 약하거나 선한 사람, 혹은 거인 골리앗에 대적하는 소년 다윗임을 자처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팽배해져가는 안티족(族)들의 상당수가 그런 경우다. 한국교회의 사정으로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복음에 대해 전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 허덕인다. 이것이 참된 일꾼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와는 달리 타 교회나 목회자의 흠을 꾸짖으며 ‘광야의 선지자’처럼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목청 높은 광야의 선지자들은 신학과 목회의 지난(至難)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비판의 도정에 오른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날 많고 많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안티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본질에 깊이 있게 접근할 기회를 갖지 않았거나, 무엇을 성취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고 있거나,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남을 타박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먼저 자신을 누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서로를 산산조각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의 삶을 비루먹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힐난은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법이다.

지금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지난해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준우승한 뒤 최근 정식 데뷔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다. 박진영이나 윤도현 같이 가요계의 아이콘이 된 스타들이 한결같은 극찬을 보내고 있는데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들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봄을 자극하는 밤바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청량한 목소리에 가사도 담백하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바다 산책의 즐거움을 전화로 알려주고 싶은 청년의 감성이 싱싱하게 전해진다. 유행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가진 내공이라 좋다.

설득력은 이런 것이다. 자신의 실력으로 말하면 스스로 빛나고, 듣는 이도 좋다. 남을 비판하는 것에 치중하는 사람들은 자기 것이 없다. 점점 전문화돼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콘텐츠 없이 버티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오늘 19대 총선이 치러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투표하러 갈 시간이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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