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삶의향기

[삶의 향기-차정식] 그 시절, 골목의 풍경들

[삶의 향기-차정식] 그 시절, 골목의 풍경들 기사의 사진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 골목에는 구멍가게 두어 개가 들어서 있었다. 오고가면서 호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껌이나 사탕을 사먹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구멍가게들은 요즘에 불량식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갖가지 달콤새콤한 잡동사니를 잔뜩 품고 우리들의 동심을 유혹하였다. 등·하굣길에 그리로 몰려드는 아이들의 발걸음 속에 그 작은 가게들은 늘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들썩거렸다.

아련한 구멍가게의 추억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한 건 ‘뽑기’였는데, 동그란 껍데기를 떼어내서 그 안에 나오는 번호가 무어냐에 따라 크고 작은 각종 상품이 제공되었다. 뒷골목에는 ‘달고나’라는 걸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달달한 하얀 고체를 연탄불에 녹여 소다를 섞어 젓다가 납작하게 누른 뒤 이런저런 모양을 박아 그 선대로 망가뜨리지 않고 떼어내면 곱빼기 상품이 주어지는 요깃거리이자 놀잇거리였다. 그렇게 흥미진진한 잡동사니들이 내 어린 동심을 자극하며 발길을 끌었던 옛 시절의 추억이 눈에 선하다.

어디 그뿐인가. 유년기의 골목은 추운 겨울날 포장마차 속으로 호떡과 붕어빵, 홍합탕을 파는 훈훈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안에서 뜨끈하고 짭짤한 국물을 한 대접 들이키면 추위도 금세 달아날 것만 같았다. 푸짐하게 구워낸 호떡은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 훈기 덕분인지 얼어붙은 골목길이 녹아가면서 동네의 개들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몸을 풀었다. 동네 아이들의 곱은 손이 부드러워지고 거친 세월에 눌린 가슴이 더러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동안 그 시절의 골목들은 미덥게 다가왔다.

요즈음 재벌이나 대형 슈퍼마켓들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고 영세 상인들의 원성이 높다. 아이들의 주전부리와 학용품을 팔던 침침한 옛 시절의 구멍가게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골목에는 여전히 작은 가게의 ‘구멍’을 찾는 어린 동심이 머문다. 오늘 오후 축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 막내는 자주 찾는 아파트 뒷골목의 ‘진버들문구’를 이번에도 빼놓지 않았다. 녀석은 잡동사니 불량식품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르더니 서너 개 사서 나왔다. 내가 그것들을 검사하면서 ‘여기 이 합성착색료가 안 좋다는데…’라고 지적했지만, 내 말은 힘이 좀 빠진 채 싱겁게 겉돌았다. 내 유년시절 그 훈훈하던 골목길의 풍경들이 설핏 스쳐간 때문이었으리라.

아무리 거대 기업이 대형 마트를 만들어 넓고 쾌적한 공간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시대에도 우리에게는 자잘한 구멍가게들이 선사하는 소박한 장소가 필요하다. 비록 좁고 침침해도, 거기에는 도란도란 여린 동심이 자라며 즐겁게 어울리는 상큼한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작은 생명, 소박한 아름다움

복음서에 나오는 ‘목자’는 왜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놔둔 채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향해 오던 길을 되짚어가셨을까. 그것이 아흔아홉에 한 마리를 보태어 백을 채우려는 완전함의 욕망과 무관한 것이라면 이는 작은 생명을 깊이 사랑하시는 연민의 발로 아니었을까. 화려함이 반드시 아름답지는 않다. 더 많은 경우 작은 것이 깊은 아름다움의 감각을 선사한다. 이런 깨우침이 우리 삶의 잃은 것을 상기시키며 더러 심금을 울린다. 오늘도 뒷골목의 풍경은 내 어린 시절을 불현듯 되살려낸다. 그렇게 작지만 소중한 아름다움으로 거창한 것의 허세와 위대한 것의 허영에 찌든 내 시선을 거듭나게 한다.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신학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