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내면의 힘 기사의 사진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 우리를 가슴으로 혹은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 말하고 싶다. 클래식 음악에서 작곡가는 건축물을 만들고 연주자는 그 구성된 건축물에 소리 에너지를 입혀 물질로 형상화한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창조 영역은 같이 이뤄지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또 연주자마다 가진 생각들이 조금씩 다르기에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이 자기주장을 하다가 점수를 합산해 보면 특별한 개성 없이 애매하게 연주한 연주자가 입상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분리하자면 연주, 작곡, 역사적 의미, 음향, 스타일 등 무수히 많은 요인으로 좋은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주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이야기하는 경험이다. 그렇기에 연주할 때는 청중이 앞에 있더라도 나 자신 깊은 곳과의 대화여야 한다. 청중을 의식하는 순간 음악은 순수성을 잃는다. 누군가의 시각을 의식하는 것은 온전히 존재의 중심에 거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연주의 이상적인 상태는 내면으로 들어간 우주에서의 유영이며 신을 만나는 경험이다.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는 상태이고 수많은 청중 앞에서도 연주를 잘할까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무척 정교한 것이라 그저 편히 즐길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유려한 흐름과 풍부한 소리로 유명한 루빈스타인은 에튀드를 연주하기 위해 최소 2000번을 연습했다고 한다. 손놀림이 많고 빠른 곡은 최소 그 정도를 연습해야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도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다. 몇 백 명의 청중들 앞에서 1초에 몇 개씩 쳐야 하는 음들을 손끝으로 조각하면서, 타인에 대한 의식을 놓아 버리고, 내 존재의 모든 것이 우주에 있는 느낌은 말이 쉽지 그리 녹록한 작업은 아니다.

몇 년 전 아끼던 피아니스트 후배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슬픔에 빠져 울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허무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피아노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팽의 전주곡 17번을 치면서 희한하게도 마치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주를 마친 다음에는 하루 종일 흐느꼈던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내 마음에서 편안하게 그녀를 보내줄 수 있었다.

그 뒤로 17번을 칠 때에는 언제나 내면으로 들어가기가 수월했다. 몇 달 뒤 독주회를 했었고, 다음 달 잡지에 그 음악회의 비평기사가 실렸다. 17번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평이었다. 얼마 전에는 그 곡의 연주CD를 듣고 한 영화감독님이 영화에 넣고 싶다고 요청했다. 전주곡 24곡 중에서 더 아름답거나 슬픈 곡들도 많은데, 신기하게도 이 곡에만 사연이 많다. 인생은 신비한 것이다. 우리는 밖이 아닌 내면으로 들어가서, 예상치 않았던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연결이 되고 공감을 하게 된다.

임미정 한세대 교수·하나를위한음악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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