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 기사의 사진

“진보진영은 후보 상품성, 지역, 시국, 상대후보 문제 등 4가지를 전부 총족시켜야”

오는 12월 치러질 대선에서의 승부를 놓고 여야의 셈법이 다양하다. 대권 후보 레이스에 돌입해 몇 가지 불협화를 내고 있는 새누리당은 크게 볼 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대세론을 등에 업고 박근혜 추대론 근신론 위기론 등을 띄우며 몸조심 중이다. 이에 비해 총선에서 참패한 야권은 오히려 4·11 총선 정당득표율에서 진보 성향 득표율이 앞선다며 분위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물론 중요하다. 총선이 단 한 표 차이라도 진 사람은 떨어지는 것이지만 대선은 모든 표의 합산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정당득표율이 총선 의석수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대선은 이런 단순계산으로는 맞지 않는 특수성이 있다. 산술적인 총선 결과보다는 지금까지의 대선이 보여준 보수 및 진보정당이 승리하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것이 훨씬 현실적일 것이다.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①후보개인의 상품성 ②지지자의 지역 분포 ③시국 상황 ④후보자 주변문제 등 네 가지의 절대적인 경우의 수가 있다. 보수정당의 후보가 승리하려면 이 같은 경우의 수 중에서 몇 가지를 충족시켜야 하는가, 역으로 진보정당의 후보가 승리하려면 몇 가지를 충족시켜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훨씬 정확도가 높은 분석이 될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1997년 대선의 예. 첫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뛰어난 상품성이 있었다. 반 DJ 정서도 상당했지만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실정으로 어느 정도 누그러져 ‘역시 대통령감’이라는 상품성이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둘째 DJT 연합으로 김대중 김종필 후보가 손잡아 서울 수도권 호남권 외에도 충청권에서 크게 우세했고 여기에 박태준 전 총리까지 합세해 영남과 강원도에서도 어느 정도 표가 나와 줬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인제라는 국민신당 후보가 500만 표 가까이 보수정당의 표를 잠식해 줬다.

셋째 IMF 구제금융이라는 시국 상황이 맞물려 김영삼 문민정부의 지지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넷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범국민적 공분의 정서가 형성됐다. 이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촘촘하게 맞물려 김대중 후보의 승리가 가능했다. 그래봤자 39만표 차이의 승리였다.

이 셈법은 2002년 대선에서도 똑같이 유효했다. 첫째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중반부부터 노무현 후보가 예상 외로 이인제 후보를 누르면서 불기 시작한 바보 노무현 바람과 노사모 돌풍으로 급부상한 노 후보의 상품성, 둘째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으로 인한 지역적 한계 극복, 셋째 월드컵 기간 동안에 형성된 젊은 세대들의 코리아 열풍과 미군 장갑차에 숨진 두 여중생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감정, 넷째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 등 모든 경우의 수를 충족시켜 줬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노 후보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진보정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한두 가지만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주가연루의혹 속에서도 530만 표 차이로 이긴 것이 단적이 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정당의 악재와 진보정당의 악재는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다르다. 이번 총선에서도 김용민의 악재와 김형태의 악재는 표로 반영되는 결과가 크게 달랐다. 이정희의 악재와 손수조의 악재 역시 파급효과가 다르다.

현재 야권은 객관적으로 볼 때 이들 경우의 수에 있어 한 가지도 유리한 상황에 있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은 투표율이 몇 퍼센트가 되면 광화문에서 춤을 추겠다, 꽁지머리에 빨간 염색을 하겠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겠다는 등 말장난으로 떠들썩했다. 이 만수(萬殊)를 다 합쳐도 손뼈가 으스러지도록 유권자들에게 손을 준 여권 박근혜 위원장의 진지함 하나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야권은 이 같은 재기(才氣)와 다양성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도량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의문이고, 나꼼수처럼 ‘찧고 까부르며’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것 외에 진중하게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내공과 가치가 무엇인지 미심쩍다. 지금 야권에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기혁신이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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