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삶의향기

[삶의 향기-송병구] 오늘 일용할 전셋집을 주시옵고

[삶의 향기-송병구] 오늘 일용할 전셋집을 주시옵고 기사의 사진

봄은 전국적인 이사철이다. 강남 갔던 제비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2년마다 이삿짐을 꾸린다. 삼월 윤달이 시작된 지금은 이사수요가 적다 하나 불안한 잠자리까지 줄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이사 온 지 2년이 되어 다시 이삿짐을 꾸렸다. 용케 봄장마를 연상할 만큼 징검다리처럼 찾아온 큰비를 피했다.

27년 전 처음 교회를 맡아 이사하던 날, 봄비가 몹시 내렸다. 소형 트럭이 좁은 마을 둑길로 들어오다 미끄러진 탓에 빗속에서 이삿짐을 날라야 했다. 이사할 적마다 비를 연상하는 까닭은 첫 기억이 비에 흠뻑 젖어 있기 때문이다. 하긴 러시아 속담에 비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니 매사에 긍정할 일이다.

좁은 생활공간 손바닥만 한 꿈

두 해를 교회 곁방에서 총각 목회자로 지낸 후 장가들면서 동네 한복판에 있는 두 칸짜리 시골집을 얻었다. 비록 대문이 아귀가 맞지 않을 만큼 낡았지만, 불을 약간만 때도 온 방이 절절 끓던 따듯한 집이었다. 신혼살림이 들어오던 날, 비는 오는데 장롱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천장이 낮아 어찌나 진땀을 흘렸던지, 결국 천장을 뜯어내는 곤욕을 치렀다. 장한 마음으로 개척한 교회라 달다 쓰다 할 처지가 아니었다.

가장 뿌듯한 기억은 교회를 짓고 시멘트 냄새가 배어나는 사택으로 이사한 때였다. 겉모습만 완성된 예배당은 몇 해 더 공사를 해야 했으나, 그래도 널찍한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고, 붉은 파벽 위로 담쟁이를 올리며, 당시로서는 중앙집중식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던 신식 집이었다. 뜨내기 같은 다양한 목회지 탓에 그새 열 번 이삿짐을 꾸렸다.

이사가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생활의 잉여부피를 덜어내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한 곳에 오래 살았다면 온갖 잡동사니를 갖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한때 독일로 이주하면서 모든 가재도구를 처분했는가 싶었는데, 10년 전 귀국하면서 더 많은 살림을 불려왔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 욕심인가 보다.

문제는 자발적 선택과 상관없이 불가피하게 이사를 다녀야 하는 이웃들의 처지다. 현실은 터무니없이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2년마다 이사해야 하는 가정이 많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존재한다. 게다가 점점 늘어가는 1인 가족은 주거환경이 더 열악하다. 원룸이니, 옥탑방이니 우리나라 가구 수의 넷 중 하나는 상상보다 비좁은 공간에서 손바닥만 한 꿈을 꾼다.

우리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어섰는데, 현재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전국 54%, 서울은 41%라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아질 전망도 별로 없다. 지난 3년 동안 전셋값 상승률 26%는 소득 증가율 10.2%를 두 배 반 이상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높아만 가는 집세는 사람들의 꿈을 점점 하향 조정하게 만든다.

희망 있다면 기도할 이유도 있어

마르틴 루터는 소교리문답집에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이렇게 해설한다. ‘일용할 양식은 삶을 위한 양식과 필수품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다. 먹고 마시는 것, 옷, 신발, 집, 정원, 경작지, 가축, 현금, 재산, 순수하고 선한 배우자, 순박한 아이들, 착한 고용인, 순수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자, 선한 정부, 좋은 날씨, 평화, 건강, 교육, 명예, 좋은 친구, 신용 있는 이웃이다.’ 주기도문은 가끔씩 만나는 불편한 봄비가 아니다. 우리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전셋집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는 이웃이 여전히 많다.

송병구 색동감리교회 담임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