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법으로 국회를 선진화한다? 기사의 사진

국회선진화법이라고도 하고 몸싸움방지법이라고도 한다. 국회의원들만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도 달리 없다. 이 잘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몸싸움을 법으로 방지함으로써 국회 선진화를 이뤄야 하겠단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 TV 화면에서 횡설수설하다가 마지막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코미디언(김은우씨)이 있었다. 국회가 지금 그 흉내를 내는 중이다.

우리 정치인들에게는 남다른 뻔뻔함이 있다. 전기톱, 해머, 최루탄 등으로 무장하고 비장한 표정까지 더한 가운데 ‘황야의 결투’를 벌이면서도 언제나 ‘남의 탓’이다. 사람 탓하기가 좀 미안해지면 법을 타박한다. 그걸 바꿔야 국회의원들은 교양덩어리가 되고 선진 국회의 선진 의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야가 모처럼 뜻을 모아 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가 없는 법안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한 게 개정안 골자다.

여야의 국회 공동통치 담합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하는 만큼 지난달 24일 처리가 무산됐던 이 법안이 아마 오늘 본회의에서는 통과될 것이다. 박 위원장 논리는 분명하다. ‘여야가 합의했고 총선 때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정치리더로서 ‘약속’을 소중한 덕목으로 여겨 실천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다만 약속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몸싸움은 정당과 국회의원 각자의 철학 인성 소신 의지의 문제다. 법이 그것까지 규정할 수는 없다. 국회에서의 폭력 금지는 법규범이다. 그러나 그것을 초래하는 정당 지도부의 정서, 폭력을 행사하고 욕설을 쏟아내는 개인의 인성 같은 것은 도덕규범에 속한다. 법을 백번 고쳐도 그건 언제나 법 밖의 문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법이 ‘국회의 선진화’를 보장할 수 있는 경우란 국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이다. ‘5분의 3’이라는 조건이 가리키는 바가 그것이다. ‘여야가 합의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시도하지 말자.’ 그것이 개정법안의 요체다. 사람의 문제를 법으로 풀겠다는 것인데, 글쎄올시다.

문제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아니라 정당의 오만과 과욕에 있다. 국회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지금까지도 정당의 지도부들 간에 합의가 있고서야 문도 열고 회의도 개최할 수 있었다. 군소정당 소속이나 무소속 의원들은 존재 의미와 의의가 거의 없다. 그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이다.

정당법 먼저 고치는 게 순서

국회법 이전에 정당법부터 고칠 일이다. 권력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게 해야 한다. 특히 5년 단임의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는 강고한 중앙당체제를 해체하고 국회는 국회의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국민의 표를 얻겠다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시절의 통치권자 행세를 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어떻게 유력정당들이 국회를 공동통치하겠다고 공공연히 ‘합의’하고, 법제화하려고 생각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오만과 과욕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정당도 당연히 국회에 연고가 있지만 국회의 원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정당들끼리 ‘5분의 3’이라는 상호 안전판을 만들어두고 서로 이익을 반분하자는 발상이 어이없다.

사실상의 합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런 법조문에 대해서는 위헌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회의 기능에 유력정당들이 원천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게 한 법이 대의민주정치의 원리에 부합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담합이 용인되면 그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다. 국회의원들은 정당 지도부의 거수기가 되고 대통령은 거대정당 간 정쟁의 희생양 핑계거리 또는 소모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도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오불관언 자기 길만 가는 것으로 대응했지만 처지의 본질은 같았다. 다음 대통령은 또 어떤 처지로 5년을 버텨내야 할지 필부 주제로도 용이 쓰인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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