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최시중씨를 미워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현실과 맞지 않는 종편 4채널을 선정한 데에는 빅게임의 경험이 밑바탕 됐을 것”

우리나라 거의 모든 언론 분야 학자들, 방송관계자들, 광고전문가들이 반대한 4개의 종합편성채널 선정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지난 2010년 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종편채널사업자로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4개의 신문사를 선정한 직후 생겨나 얼마 전까지 가시지 않았던 의문이다.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현실을 무시하고 이렇게 무조건적인 드라이브를 건 사례는 없다. 과감하기로 이름난 최병렬 공보처장관도 1990년 ㈜태영을 새 민방(SBS)의 지배주주로 선정할 당시 이렇게 무모하지는 않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장악(언론통폐합)에 비견할 만한 쿠데타적인 이 과감함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최시중 당시 방통위원장도 신규 종편채널은 1개, 아무리 많아도 2개 이상은 곤란하다고 누누이 말해오다가 2010년 후반기 들어 갑자기 여론을 뒤집은 데에는 무슨 곡절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최시중 전 위원장이 지난달 23일 복합물류단지 시행사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수수 사실을 처음 시인하며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 돈의 사용처에 대해 “2007년 한국갤럽 회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에서 일했는데 당시 받은 돈을 대선 여론조사 자금으로 썼으며 파이시티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

그는 이 말이 곧 대선자금으로 정치 쟁점화되자 다음 날 뒤집긴 했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과감한 선정이 있기까지에는 모종의 연습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근거가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갤럽연구소 회장을 지내긴 했지만 그 외의 별다른 공직 경험이 없는 최시중이라는 사람이 국가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종편채널에 저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에는 사전에 어떤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대선 여론조사라는 인위적 빅게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2007년 8·20 경선은 여론조사가 승패를 가른 경선으로 꼽힌다. 이명박 후보는 2006년 6월 말 서울시장직을 그만둘 때만 해도 박근혜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았고 당내 조직에서도 박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앞서 1.5% 포인트 차이로 박 후보를 제치고 신승했다. 지금도 친박계 인사들은 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역전한 배경에 최 전 위원장의 역할이 있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이런 마당에 최 전 위원장이 스스로 받은 돈을 대선 여론조사에 썼다고 언급한 이상 이를 주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국가적 중대국면에서 독자적으로 대선 여론조사를 해서 여론의 물줄기를 잡아 본 사람이라면 1개의 종편 상황을 4개의 종편으로 손댈 수 있으리라고 판단된다. 정책은 선택의 기술이다. 문제는 거대언론사의 등쌀이 아무리 거세다 하더라도 국정의 물줄기를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함부로 틀면 국가적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거대 보수언론의 반발을 잠재우고 협조를 얻어 보수 재집권의 대로를 넓히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서든 다양한 사람들이 관련되는 민주사회에서 국정농단의 책임은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다. 이것이야말로 뭇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시민사회 제1의 작동원리다. 시민들의 기대와 중소언론사의 처지를 무시하고 무더기로 나눠준 종편 시청률이 종편 보호용 미디어렙법에도 불구하고 현재 1∼2%에 머무는 사실이 그렇고, 정권의 해가 지기도 전에 감옥으로 가는 최 전 위원장의 행보가 그것을 방증한다.

대통령의 후견인임을 자임했던 유력 인사의 뒷전이 연줄의 부패사슬로 얽혀있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권력 주변 인사들의 꿈과 지배이념이 고작 그 정도였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정권의 전략기획자가 통나무처럼 쓰러지는 것은 누구의 불행인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휘두른 저 무분별함을 미워한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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