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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이동훈] 멘토 클린턴과 푸틴

[데스크시각-이동훈] 멘토 클린턴과 푸틴 기사의 사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 기원전 1250년 이타카 왕국의 유명한 철학자 멘토르가 친구이자 국왕인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임시 가정 교사가 된다는 일화가 나온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을 지도해달라는 오디세우스의 부탁을 받은 멘토르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 방식을 통해 텔레마코스에게 지혜를 가르쳤다. 오디세우스를 사모했던 아테나 여신조차 멘토르의 모습으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에게 용맹을 가르친다.

여기서 파생된 영어 단어가 멘토다.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지만 인생 진로에 중요하고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진정한 멘토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고향인 아칸소로 차를 몰고 가다 주유소에 들렀다. 휘발유를 넣어주던 주유소 직원이 힐러리의 고교시절 남자 친구였다. 주유소를 나와 남편 빌이 거들먹대며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농을 던졌다. 힐러리의 답이 더 가관이었다. “글쎄, 당신이 기름넣는 신세고, 저 남자가 대통령이 돼 있겠지.” 미 정치권에 자주 회자되던 클린턴 부부의 조크지만 힐러리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원대한 꿈을 품은 ‘멘토’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 패해 대권의 꿈을 접었지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오바마의 조력자가 돼 미국의 가치를 전세계에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클린턴은 미국의 가치 중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가 ‘민주주의 멘토’라고 불릴만한 사건은 최근 정치개혁이 한창인 미얀마에서 일어났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달 보궐선거에 당선된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더 레이디’ 시사회에서 수치 여사가 민주화의 아이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는데 민주주의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조언했다고 털어놨다. 의회에 들어가면 타협을 해야 하는데 타협은 더러운 단어가 아니라고 말해줬다는 것.

수치 여사는 한 달 뒤 이를 이행했다. 군부가 제정한 헌법을 수호한다는 내용의 의원 선서를 할 수 없다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다 이를 번복한 것이다. 클린턴의 조언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수치 여사는 야당의원들을 뽑아준 국민의 뜻을 존중해 등원키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수치 여사를 만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수치 여사의 등원 결정에 대해 대의를 위해 유연한 입장을 보여야 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얀마 정부는 수치 여사에게 24년 만에 여권을 발급해주는 등 유화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타협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인데, 멘토의 힘이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발휘되는 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멘토가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목격된다. 지난해 9월 약속대로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최근 맞바꾼 러시아가 그런 꼴이다. 멘토인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프로테제(protege=mentee, 제자라는 뜻으로 서방언론이 비꼴 때 쓰는 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벌인 것은 타협이 아닌 야합이다. 정권 나눠먹기식 타협을 하다보니 러시아 국민들이 아직도 크렘린 궁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는 등 정국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여부가 관심사가 됐을 때 그가 수십명이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던 멘토. 안 교수를 포함해 우리나라 잠룡들도 올 대선에서 어떤 멘토의 조언을 받아 어떤 타협 혹은 야합을 할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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