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기선] ‘유권자의 날’과 민주시민교육 기사의 사진

“시민교육 환경 너무 열악… 실효성 거두려면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돼야”

어제, 5월 10일은 제1회 ‘유권자의 날’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었던 제헌의원 선거일을 ‘유권자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게 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선거는 민주화 이후에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무엇보다 선거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철저히 감시·단속하고 엄중하게 처벌한 데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로써 선거문화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돼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이번에 공직선거법에서 ‘유권자의 날’을 지정한 것도 주권의식, 나아가 민주시민의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는 취지에서다. 민주시민의식을 높이는 일은 비단 공명선거를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사회적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다. 빠르게 확산되는 외국인 혐오증, SNS 등을 통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패륜적 행위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부끄럽고 두려울 정도다. 우리 민족의 미덕인 어른에 대한 공경,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성숙한 타협 문화와 소통부재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9년 한 민간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로 나타났고,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사회갈등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300조원에 가까운 돈이 매년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 채, 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사고를 키워 온 탓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정신과 신체를 균형 있게 성장시키지 않고, 몸집만 키운 결과다. 따라서 이제는 정신, 즉 민주적 시민성을 함양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이 그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선진 외국에서도 다양하게 실시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전후 나치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토록 하기 위해 정치교육이 실시됐다. 독일연방정치교육원을 중심으로 각급 학교, 일반 성인교육시설 등 모든 교육체제가 연계돼 있으며 민주주의의 본질과 절차, 정치·사회적 이슈, 갈등 해소, 윤리 등에 대해 교육한다. 통독 이전에는 통일과 관련된 내용에, 통독 후에는 동독 주민의 체제 적응과 동서독 주민 간의 이질감 해소, 그리고 타 민족 집단 혹은 타 사회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바로잡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일부 정치세력에 의한 외국인 혐오증 선동 등을 계기로 시민교육이 제도화됐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학교 폭력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이 학교 교육과정에 도입됐다. 선진 외국에서도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겪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체계적으로 도입 또는 강화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관위 평생교육원 흥사단 등 일부 국가기관과 민간단체에서 그 기관·단체의 업무성격과 관련된 시민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내용, 시설, 전문성, 예산 등 전반적인 교육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민주시민교육이 이처럼 개별 기관·단체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영세하게 실시돼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체계적·전문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유사성이 가장 많은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 운영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거 국회에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법률안이 수차례 발의되었으나 관심 부족 등으로 결국 입법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계제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는 이 법률의 제정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이기선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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