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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정식] 축제로서의 인생

[삶의 향기-차정식] 축제로서의 인생 기사의 사진

내가 사는 전북 전주에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축제가 잦다. 5월 첫 주말에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났고 연이어 한지축제가 진행 중이다. 풍남제와 세계소리문화축제 같은 행사도 연달아 개최된다.

영화제 기간 내내 짬을 내 이번에도 나는 10편의 예술영화를 봤고, 저녁 무렵 한옥마을의 붐비는 골목을 따라 어슬렁거리면서 고단한 일상의 갈증을 달래보았다. 축제의 행렬에 동참하여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생기로 달뜬 얼굴에 환한 봄빛을 물씬 뿜어낸다. 희열에 번들거리는 그 표정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울 정도다.

생명이 약동하는 이 계절에 걸맞게 사람들의 마음도 분위기에 맞춰 활기차게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축제의 계절에는 싱싱한 생명의 향기가 온 누리에 가득하다.

신나는 잔치의 추억

이렇듯 ‘축제’라는 말과 그 분위기는 사람들을 묘하게 흥분시키는 기운이 있다. 움츠러든 생명을 분발케 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면서 생명 본연의 기상을 회복시키는 특별한 ‘사건’으로 축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그 신나는 풍경은 ‘공동체’의 사람살이가 진득하던 때, 천막 아래 멍석 깔고 빈대떡 부치며 왁자지껄하던 옛 시절의 잔치판을 연상시켜 준다.

그 시절 동네잔치가 열리면 이웃들뿐 아니라 먼 곳에서 찾아온 거지들과 강아지들까지 흥겹게 어울려 함께 먹고 놀았다. 봄가을로 학교 운동회가 열릴 때면 부푼 동심을 담아 하늘로 올리거나 땅에 굴리던 거대한 풍선과 발랄한 음악, 짹짹거리던 아이들의 아우성은 또 얼마나 상큼한 축제의 광경이었던가. 누구나 경험했듯 축제는 이처럼 선한 것이다. 그 질펀한 놀이판의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자기 방어의 경직된 가면을 벗고 한 몸으로 어우러질 때 그것은 또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랴.

하나님 나라의 향연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잔치, 곧 축제의 자리로 종종 비견된다. 큰 임금이 베푼 잔치의 비유도 나오고 융숭한 대접 가운데 잔치 분위기가 느껴지는 세리 삭개오의 만찬도 있다. 집 나간 탕자가 되돌아와 마냥 기쁜 나머지 그 아버지가 동네사람들을 초청하여 베푼 잔치도 감동적이다. 아끼는 동전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사람들을 초청한 이야기도 천국 비유로 등장한다.

구약성경의 이사야서는 장차 구세주가 나타나 이 땅의 백성을 구원하리라는 종말의 희망을 전하면서 산상에서 그 백성들이 모여 기름진 음식을 나누며 잔치를 벌이는 것을 ‘메시아의 향연’으로 제시한다. 그만큼 하나님이 이 땅의 피조생명을 향해 베풀어주신 은총의 백미는 축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로서의 인생! 향연으로 나눠지고 누려지는 삶! 심지어 고단한 노동조차 유쾌한 놀이처럼 경험되는 질펀한 축제의 현장!

이 화창한 5월의 한복판에서 나는 이런 야무진 몽상을 일상의 한구석에 새겨본다. 사람들이 골치 아픈 일들에 찌들고 격무에 시달릴수록 이러한 축제의 꿈은 더 간절해지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나를 이 땅에 생명으로 내셨는가를 생각할수록 그 해답은 명료해진다. 죽도록 헛고생하다가 찌그러지라는 저주는 생명 창조의 본래 뜻이 아니었다. 외려 제 생명의 온당한 가치를 회복하여 축제로서 삶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달무리 지는 축제의 밤, 그 황홀한 낭만의 꿈이여, 이 5월의 빛 가운데 오래 머물라!

차정식(한일장신대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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