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문재인의 정치하기 기사의 사진

“차이는 안고 가면서 연대를 해야 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에 대해 한 말이다. 한겨레 ‘조국의 만남’에서 읽은 바로는 그렇다.

‘안고 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가 좀 모호하다. 차이는 ‘괄호 속에 넣어두고’ 서로 도와서 이익을 나누자는 말일까?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의 말로는 듣기에 좀 그렇다. 명분은 밀쳐두고 이익만으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정치(正治)로서의 정치가 아닐 것이다.

모호한 표현으로 본질 호도

민주당과 통진당의 연대와 후보단일화가 4·11총선에서 통진당의 선전, 민주당의 위축을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문 고문이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해 통진당에 휘둘린 것이 패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랬으니 대선에서는 이쪽이 ‘연대의 이(利)’를 누려야 셈이 맞다. 그런 생각일까?

민주당이나 통진당이나 폭력·부패정치에 대한 저항을 동인으로 성립되고 성장해 왔다. 그 전신들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다는 뜻이다. 지금도 이들에게서 가장 큰 명분은 정치의 폭력성 부패성 배제다. 걸핏하면 이명박 정부의 폭력성을 비난하면서 ‘MB아웃’인가 하는 피켓을 치켜들고 나서는 까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정치의 가장 추하고 폭력적인 면을 드러내 보였다. 통진당 당권파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고 뉘우쳐 고치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목적의식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석기 김재연 두 당선자는 이미 의원 등록을 마친 모양이고…. 비당권파도 ‘통합의 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민주당의 문 고문까지 그들과의 연대에 집착하는 것은 의외다. 정권 장악보다 정치발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발전을 중시한다면 진보세력 일각의 처절하기까지 한 권력투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도 문 고문은 너무 쉽게 ‘연대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 고문의 의아스러운 화법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공동정부’를 제의했다. 안 원장은 이 시점까지는 개인이다. 정당인이 아닐 뿐더러 아직 출마의사도 밝히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공동정부’를 구성하자는 데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조국 교수는 ‘해방 이후 최초로 민주진보세력의 단일 연립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의미’라고 했던데 그 말도 많이 허풍스럽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출마도 하기 전 표계산부터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비전을 내놓고, 신념을 피력하면서 아울러 열정을 보여줘야 한다.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대통령이 되면 나라와 국민을 어떤 세상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정치는 어떤 방식으로 해 나갈 것인지 그런 것부터 말해주는 게 순서라고 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문 고문의 머릿속은 표계산으로 복잡해 보인다.

정치공학, 선거공학이라는 말이 유행이더니 문 고문도 어느새 그런 분위기에 젖은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계산은 당과 참모들의 몫이다.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표계산으로 미리 꾀를 내고 방법론을 제시하고 하면, 국민은 누구에게서 미래, 희망, 신뢰 이런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문 고문은 ‘이해찬·박지원 담합’론이 제기됐을 때도 ‘연합’이라고 역성을 든 것으로 신문에서 읽었다. 담합이라고 비판한 측은 아마도 ‘정치 도의’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치를 가지고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 고문의 대응은 가치가 아닌 수량이었다. 친노와 호남이 ‘연합’하면 대선승리의 견인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큰 꿈을 가진 사람이 미리 특정인에게 구애하는 것, 출마도 하기 전에 표계산부터 하는 것은 자신감 결여의 한 표현일 수 있다. 이렇게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문 고문은 자신에 의해서 치명상을 입게 된다. 12월에 투표권을 행사할 한 유권자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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