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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전석운] 보수의 위기, 진보의 위기

[데스크시각-전석운] 보수의 위기, 진보의 위기 기사의 사진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정치의 몰락’(2012. 2)에서 보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의 권력 지형에서 오랫동안 우위를 점한 보수를 떠받쳐온 ‘7가지 기둥’(지식인, 언론, 기독교, 문화, 기업, 권력기관, 정당)이 흔들리고 있는 게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보수의 우위가 무너지고 있으며 보수와 진보가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진단은 명쾌해 보인다.

보수의 위축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 있다. 올 초 매일경제의 여론조사를 보면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2004년 41.6%에서 2011년 33.0%로 급격히 줄었다. 200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진보로 자처하는 국민은 32.3%로 보수의 비중에 육박했다. 비록 통합진보당 사태로 보수의 위기가 잠시 가려져 있지만 보수에 등을 돌리는 국민이 늘어나는 추세를 되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이름만 바꾼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얻은 것은 어느 정도 야권의 전략적 미숙에 편승한 불안한 승리였다. 정당 득표율에서는 오히려 진보성향의 야권에 뒤졌다. 오는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가 나서면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것이라는 가설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지난 총선에서 진보 성향의 20∼30대 유권자들의 기권이 많았으나 이들이 오는 12월에 대거 투표장으로 향할 경우 보수 후보가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접었지만 결코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보수의 위기를 가속화시킨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양극화다. 경제 위기 극복의 여망을 업고 10년 만에 보수 정권이 탄생했지만 경제운용은 기대에 못 미쳤다. 지난해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하는 등 외형적 수치는 개선됐지만 성과는 일부 대기업에 집중됐다. 불평등지수는 악화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근로자 임금 격차는 멕시코에 이어 2위로 나타났다. 한국의 근로소득 지니계수가 2010년의 경우 0.503으로 2009년(0.494)보다 올라가 소득불평등이 심해졌다. 부자정당이라는 야유가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진보의 위기는 보수가 죽을 쑤고 있는데도 대안세력으로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리더십과 전략 부재 탓이다. 반MB 정서에만 기대 개혁공천 경쟁에서도 새누리당에 뒤졌고 선거막판 불거진 김용민 악재를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우유부단을 드러내면서 의회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부정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진보의 실체에 심각한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진보는 근로자나 소외계층을 대변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로 권력을 얻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회의장에서 당 지도부를 폭행하는 집단은 진보의 가치는커녕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진보 진영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없다”며 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하는 이석기 당선자 등 구당권파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의 목욕물에 담긴 건 아이가 아니라 흉기로 보인다. 그 흉기는 어쩌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도 있다. 진보진영은 진보적 가치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국회 입성을 막아야 한다. 그런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면 더 이상 정당도 아니다.

만일 오는 대선에서 야권이 단일후보를 내고도 진다면 패배의 1차적 책임은 통진당 사태의 주역들이 져야 할 것이다.

전석운 특집기획부장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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