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삶의 향기-송병구] 베를린發 부산行 기차의 꿈

[삶의 향기-송병구] 베를린發 부산行 기차의 꿈 기사의 사진

독일에서 목회하던 시절, 한동안 토요일 아침이면 기차를 타고 먼 길을 나섰다. 형제교회 중 하나가 사정상 토요일 오후에 주일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목회자가 귀한 터라 역에 마중 나오고, 배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동차로 가면 한 시간 이상 절감할 수 있었지만, 두 배나 더 걸리는 기차 여행을 감수한 이유가 있었다.

소도시 지겐으로 가는 기차는 자워란트 산지를 달렸다. 보쿰을 떠나 루르 지방의 평원을 지나면 이내 산악으로 접어들었는데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숲과 오래된 소읍을 차례로 지나는 풍경은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말에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들의 귀가 장면이었다.

시골 정거장 플랫폼에는 어김없이 마중 나온 어머니가 계셨다. 반가움에 포옹하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지켜보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모든 역마다 반복되는 눈부신 재회였다. 그런 짠한 따스함은 기차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다시 울릴 도라산역 기적 소리

우리나라 남과 북이 분단 57년 만에 철로를 연결하고 첫 시범운행을 한 것은 2007년 5월 17일이었다. 그날 서쪽 경의선은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동쪽 동해선은 금강산 청년역에서 제진역까지 철길이 열렸다. 남북이 철로를 잇기로 합의한 지 무려 7년 만에 시범운행에 이른 것이다. 기차가 비무장지대를 통과할 때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이었던가. 그러나 여러 달 화물열차만 왕복하던 끝에 남북관계의 악화로 중단되고 말았다. 남북소통의 아이콘이었던 도라산역도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라는 꿈을 당분간 접어야 했다.

시범운행 5주년을 맞이한 그날, 도라산역을 방문했다. 다행히 도라산 접경은 하루 23차례 개성공단을 오가는 관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되겠다던 도라산역의 희망과 달리 지금 이곳은 북으로 가는 마지막 역이 되고 말았다. 도라산역 구내에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게시판에는 철도연결을 후원한 사람들의 명단이 검은 바둑알처럼 점점이 박혀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침목이 아니라 다수의 평화를 후원하고, 거창한 미래가 아닌 소박한 바람을 기부한 사람들이었다.

남북철로를 다시 잇기 위한 노력이 교회 안에서 고개를 들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내년 10월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에 참가하는 세계 교회 대표단이 기차로 입국하는 방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평양과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온다고 하니 꿈같은 이야기다. 내년은 휴전협정 60주년이라니 너나없이 극적인 변화를 모색할 해가 아닌가. 내일모레 떠날 교회협 평화열차소위원회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모스크바 베를린 제네바를 거치면서 세계 교회와 만나 고민의 질을 높이게 될 것이다.

세월의 정거장마다 사랑 싣고

남북 사이에 다시 기차가 오가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얘깃거리가 생겨날까. 아마 57년 이전으로 돌아가 애틋하고 눈물 많은 사연들을 정거장마다 부지런히 실어다 줄 것이다. 만약 유럽까지 열차가 연결된다면 그동안 그저 그런 수학여행에 시들해진 아이들은 대륙에서 길을 찾아보려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당장 민족의 혈맥을 잇는다는 식의 거창한 슬로건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밤낮 울려대는 기적 소리는 꽉 막힌 귀청이나마 시원하게 뚫어 줄 것이 아닌가. 그날 도라산역에서 누군가 그랬다. “분단의 세월이 천연덕스럽게 흘러가고 있다”고.

송병구(색동감리교회 담임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