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상호 조화와 수렴의 정치를 기사의 사진

‘경주고도보존회’(회장 이정락 변호사)라는 단체가 있다. 천년 고도 경주를, 역사와 유적과 삶이 생동감 있게 어우러지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염원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단체의 연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답사단에 섞여 며칠간 중국의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를 구경했다.

고향을 같이하고 있는 처지로는 많이 난처한 편승이다. 모임에는 동참하지 않으면서 답사여행에는, 그것도 관광객으로 끼어든다는 게 여간 미안한 노릇이 아니다. 그래도 이런 기회는 얻기가 어렵다. 편한 사람들과 길동무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좋은 길동무가 반갑기는 답사단 멤버들도 다를 바 없다’는 주최 측의 인사치레에 불고염치, 엉덩이를 들이민 시말이다.

유물·遺跡 짐 아닌 축복이어야

항저우는 춘추시대의 월나라, 쑤저우는 동시대의 오나라 도읍지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관광지로서 말할 때는 항저우의 자연경관, 쑤저우의 역사유적이 강조된다고 한다. 그리고 상하이는 뻗쳐오르는 중국 국력의 상징이다. 이들 세 지역, 거기에 운하 위의 고풍스런 마을 우전까지 둘러보면서 역사도시의 발전방안을 고민해본다는 게 이번 답사여행의 목적이라고 들었다. 서호(西湖) 등 옛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던 자연경관과, 고색창연해서 더 자랑스러운 유적, 그리고 중국인들의 자신감 자긍심의 바탕이 되고 있는 마천루 숲은 그런 여행목적에 부응하기로는 정말이지 제격이다.

역사 쪽으로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뭐라고 느낌을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관광객으로서의 소감이라면 한두 마디는 거들 수가 있겠다. 거기에는 역사와 현실적 삶의 조화 혹은 상호수렴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가 고집되는 나라의 자본주의적 경제번영도 같은 표현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원래 궁합이 맞기로 정해진 상대가 있는 게 아니라 맞추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는 뜻이다.

주마간산 식의 여행을 하고서 말이 많다면 대개 허풍이지만 가르침을 받은 값은 해야 도리이겠다. 경주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정체(停滯)상황을 극복해나갈 길이 어울림에 있다는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닫는 기회였다. 유적 보존 따로 있고, 시민 생활 따로 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정책을 세워 추진하면, 주민들로 하여금 역사와 유적을 짐으로서가 아니라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 조화와 상호수렴의 정신이다. 정치는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향한 방법론적 경쟁일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그 점에서는 터무니없는 독선주의자들이다. 현실의 정치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천수백년 전의 역사적 사실까지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의사당 내 전투에 동원된 전기톱, 해머, 최루탄의 해악은 이에 비하면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남들은 마음 모아 달려가는데

중국의 오나라와 월나라는 전통적인 적국이었다. 나라 사람들도 자연 서로를 원수로 대했다. 이런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상황을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렇지만 손무(孫武)가 맨 처음 이 말을 한 까닭은 달랐다. 오인과 월인은 서로 미워하지만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면 좌우의 손발처럼 필사적으로 서로 돕게 된다. 바로 이 같은 단합의 힘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런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도읍이었던 쑤저우와 항저우, 이들과 패권을 다툰 옛 초나라의 땅 상하이는 함께 고도성장과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각 시의 도시계획관에서 보고 들은 현재의 발전상과 미래의 청사진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리의 새마을운동 경험에서 배워 경제개발을 추진했다는 나라가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현실임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국민을 분열시킴으로써 반사 이익을 얻으려고 갖가지 해괴한 전설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민족사에 죄를 짓는 것임을 깨달을 일이다. 제발 멋있게 경쟁하는 모습 좀 보여주시라. 나쁜 꾀 그만 내시고…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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