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최균] ‘좋은 이웃들’ 기사의 사진

우리 주위에 복지서비스를 꼭 받아야 하는 소외계층이 있지만,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여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예를 들면, 비좁은 쪽방에서 폐지를 모아 팔면서 궁핍한 노년의 삶을 살지만, 오랫동안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이 있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이다.

정부도 이처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맞춤식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국에서 복지소외계층을 다함께 찾아내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특별히 지역사회에서 ‘좋은 이웃들’이라는 자원봉사단체를 결성하여 이웃 가운데 어려운 사람을 찾아내어 읍·면·동 또는 시·군·구에 신고하도록 알려주는 새로운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좋은 이웃들’을 외국의 사례와 비유한다면, 19세기 영국의 우애방문단과 같이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권면한 제도와 비슷하다. 가까운 일본의 민생위원이나 정내회(町內會)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이중 민생위원들은 9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의 위촉에 따라 실비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좋은 이웃들’보다 광범위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설립된 ‘좋은 이웃들’은 민간중심의 자원봉사단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므로, 시·군·구의 통합사례관리팀인 ‘희망복지지원단’과 긴밀한 연락망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제도가 잘 정착돼 ‘화장실에서 사는 삼남매’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모든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안전망을 구축하여 보호하고 있다. 그 보호망이 이중 삼중으로 보호 장치가 되어 있을수록 복지국가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심지어 석·박사학위 소지자 중에서 미 농림부로부터 푸드 스탬프(식품교환권)를 받아 연명하는 사람이 무려 13만7000여 명이나 된다.

어떤 이들은 가난이 사회구조적 책임이며, 이는 당연히 국가가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공공재원으로 충당하는 국가의 복지제도만으로는 촘촘한 보호망 구축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고, 민간자원을 개발·연계하는 민·관 협력체계, 즉 협치(거버넌스)가 요구된다. 다함께 잘사는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예산과 민간부문에서의 자원봉사 및 나눔을 통하여 온전한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한 때에 우리의 따뜻한 이웃들이 함께한다면, 우리사회는 경쟁 중심에서 나눔 중심의 사회로, 혼자보다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는 그러한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이웃들’ 봉사대가 지역사회의 풀뿌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제도 정착이 필요한데, 이들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지자체와 사회복지협의회 등의 관련 단체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덧붙인다면, 복지소외계층을 발굴하고 민간자원을 연계하여 지원하는 것도 현 시점에서는 중요하나, 근본적으로 빈곤층 가운데 사회서비스를 받는 비율이 낮은 상태인 만큼 서비스 대상 범위와 조건을 점차 완화하여 제도적으로 복지소외계층을 줄여나가는 정부의 노력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최균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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