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고아-파란눈 선교사들의 50년만의 해후

6·25 전쟁고아-파란눈 선교사들의 50년만의 해후 기사의 사진

50여년 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는 둘 다 머리가 허연 노인이었다. 60대와 80대의 두 사제(師弟)는 서로를 부등켜 안은 채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CTS기독교TV(회장 감경철)가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후원으로 마련한 한국전쟁 고아 돌봄사역 미국 선교사 초청 행사가 지난 22∼28일 서울과 대구 등에서 펼쳐졌다.

40명의 초청 선교사 일행 상당수가 50여년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고 대부분 80세를 넘긴 고령이었다. 선교사들은 방한 일정 중 그들이 직접 세우고 가르쳤던 직업학교의 한국인 제자들과 40∼50년 만에 재상봉 했다.

특히 23일 서울세종대컨벤션센터와 25일 대구수성호텔에서 진행된 직업학교 동문회는 미국인 스승과 한국인 제자가 얼싸안는, 마치 남북이산가족 상봉 같은 감동적인 장면이 이곳저곳에서 연출됐다. 이들은 수십년 만에 만났음에도 서로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아직까지도 소중하게 보관해 온 옛날 사진들을 꺼내보며 밤늦게까지 웃음꽃을 피우며 과거를 추억했다.

대구경산지역 직업학교 동문회 회장으로 서울과 대구 동문회에 모두 참가한 김청은(65)씨는 캔브런크(83), 트와일라(83) 부부 선교사를 보고 목이 메었다.

1956년 결혼하자마자 폐허가 된 한국에 온 캔브런크 선교사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중1때 결핵에 걸린 김 씨를 친자식처럼 돌봐주었다. 김씨는 53년만에 만난 두 선교사를 앞에 두고 당시 꼭 하고 싶었으나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을 이제야 꺼낸다고 했다.

“그 때 제게 너무나 큰 사랑을 베풀어 준 트와일라를 꼭 어머니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젊어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 마음 속에서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당신들은 내 삶의 은인이자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 준 참된 스승입니다.”

김 씨는 대구에서 열린 동문회에서 자신의 사연이 담긴 영문편지를 낭독, 행사에 참석한 선교사 일행과 동문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일본으로 귀화한 은헌기(65)씨도 자신을 가르쳤던 릴랜드 윌리스 보스(83) 선교사를 만나 오랜 회포를 풀었다. 한국에서 15년간 봉사한 보스 선교사는 자신을 알아보는 은 씨를 힘있게 껴안으며 한국말로 “반갑습니다”라고 말하자 은씨는 “정말 만나고 싶었습니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당시 직업학교에서 선교사들에게 농업을 배웠기에 현재 일본에서 목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때 선교사들과 모내기를 마치고 나무 그늘에서 김밥을 맛있게 먹었던 일이 가장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은 씨는 “이 선교사님들이야말로 당시 폐허가 된 한국에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찾아 온 귀한 분들이었다”며 “한국이 이제 세계 선교사 파송 2위국이 된 것은 이 분들의 노고와 기도, 헌신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청 선교사 일행은 방한 일정 중 맞이한 지난 일요일, 춘천 예수촌교회와 경기도 분당 만나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으며 각 교회마다 교인들의 큰 환대를 받았다.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는 “교인들이 그렇게 크게 오랫동안 박수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동시에 축복한 적이 없었다”고 감격해 했다.

백발의 선교사들은 젊은 시절 자신들이 봉사했던 대구 경산 지역의 사역지를 돌아보며 한국의 발전상에 연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관광 일정까지 소화한 선교사들은 “내 생애의 마지막 여행을 내가 가장 헌신하며 봉사했던 한국에서 보낼 수 있게 해준 하나님과 CTS측에 감사를 드린다”며 한국을 떠났다.

김무정 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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