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찬일] 황금종려상으로 가는 길 기사의 사진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를 가리켜 흔히 세계 3대 영화제라고들 한다. 그것은 명백한 오류다. 권위, 위상, 영향력 등에서 칸은 다른 두 영화제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장 영화제를 찾는 감독·배우들의 수나 면모부터 비교할 수 없다. 세 영화제는 각각 자기만의 최고상을 갖고 있다. 황금종려상과 황금곰상, 황금사자상이다.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 건, 명실상부한 최고 영화제의 최고상을 거머쥐는 것이다. 그 길이 멀고도 험난하리라는 건 당연하다.

‘아무르’(사랑)로 올 제65회 칸영화제에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이 2009년 그 영예를 차지했을 때 그의 나이 60대 후반이었다. 세계적 거장으로서의 명성을 굳힐 대로 굳히고 난 뒤였다. 그 노거장이 칸 경쟁 부문에 첫 입성한 건 50대 중반인 1997년 ‘퍼니 게임’을 통해서였다. 그의 칸 첫 수상은 2001년 ‘피아니스트’였다. ‘아무르’와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에 동시에 출연한 이자벨 위페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로 그 문제작이다. 영화는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는 기념비적 쾌거를 일궈냈다. 그는 2005년 ‘히든’을 통해 감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에 비로소 칸을 정복한다.

하네케 사례에 담긴 교훈

하네케 사례가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 황금종려상에 이르는 길이다. 무엇보다 세월, 달리 말해 연륜과 실적 등이 축적돼야 한다. 물론 예외들도 없잖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89년 고작 20대 후반에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쿠엔틴 타란티노가 94년 30대 초에 ‘펄프 픽션’으로 그 상을 차지한, 흔치 않은 사례들이 있다. 포스트모던적 시대성이나 ‘미국 영화’라는 백그라운드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을 역사적 예외들이다.

올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22편 중 ‘다른 나라에서’와 ‘돈의 맛’(임상수 감독)이 수상하지 못한 건 무엇보다 상기 ‘축적’이 결여돼 있어서이기도 했다. 임 감독이 칸 경쟁 부문에 첫발을 내딛은 건 2년 전 ‘하녀’를 통해서였다. 홍상수 감독은 2004년과 2005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으로 2년 연속 진출했다. ‘두 상수’ 감독은 하지만 무관에 그쳤다. 수상기록이 쌓이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수상하려면 충격이건 감동이건 9인 심사위원들에게 압도적 인상을 안겨야만 했다.

홍상수의 영화들이야 충격이나 감동과는 거리가 먼 홍상수 그만의 다분히 마니아적 영화 세계이니 논외로 치자. 대한민국 재벌을 공격해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제재·주제는 우리들에겐 신선하고 통쾌할 순 있어도 저들에게는 아니었을 공산이 크다. 묘사의 강도도 저들에겐 심심했을 법도 하다. 문화는 말할 것 없고 취향의 차이에서도 두 영화는 칼자루를 쥔 심사위원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전하지 못했으리라. 수상작들의 면모를 보면 그 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등정 앞서 축적의 시간 필요

축적의 견지에서 칸 정복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다. 이창동 감독은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2010년 ‘시’로 각본상을 받았다. 2009년엔 신상옥 감독(1994년) 이후 최초로 경쟁 심사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박찬욱은 2004년 ‘올드 보이’로 2등격인 심사위원대상을, 2009년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봉준호는 아직 칸 경쟁 부문에 입성한 적은 없으나 지난해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 심사위원장에 선택되는 등 그만의 스타성을 지니고 있어 두 감독 못잖은 가능성이 있다.

너무 성급해하거나 조바심 내서는 안 된다. 한국영화의 수준을 탓할 필요도 없다. 관건은 세월이고 실적이며 그것들의 축적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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