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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남호철] ‘떼법’ 대신 원칙으로

[데스크시각-남호철] ‘떼법’ 대신 원칙으로 기사의 사진

여수세계박람회는 개막 초기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는 다양한 볼거리는 물론 첨단 정보통신(IT)기술에 힘입어 박람회 하면 연상되는 줄서기가 최소화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박람회 입장권을 구매한 순간부터 예약은 물론 교통, 숙박, 관광 등 모든 분야에서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통합서비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출발지에서 박람회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여행 중에 들를 관광지와 음식점, 가족에게 맞는 숙소 검색과 예약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되고, 박람회장 안에서는 휴대전화를 통해 시간대별·관람객별·혼잡도에 따라 가장 적합한 관람코스도 안내되면서 관람객들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황금연휴(26∼28일) 동안 여수엑스포는 대혼란에 빠졌다. 27일 하루에만 11만명을 넘어서는 등 연휴인파가 대거 몰리면서 잘 운영되던 예약제가 보름 만에 폐지되고 28일부터 선착순 입장 관람제로 전환된 데 따른 것이다.

예약제를 포기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여수엑스포 80개 전시관 중 아쿠아리움·한국관·주제관 등 주요 8개 전시관은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30%)과 여수 현장 키오스크(70%)에서 예약을 해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연휴를 맞아 관람객이 몰리며 아침 일찍 8개 전시관 예약이 끝나 버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관람객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엑스포조직위원회가 자랑하던 예약제는 올스톱됐다.

파장은 예상외로 심각했다. 예약제가 운영되던 시기에 30분∼1시간 정도에 머물렀던 대기시간이 예약제가 폐지되면서 한때 7시간 정도로 늘어났다. 스마트폰 보급 2500만대의 IT 강국 면모는 간데없이 30∼40년 전의 원시적 줄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떼법’이 원칙을 무너뜨릴 때 어떤 결과가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헌법 위에 있는 것이 떼법’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로 떼법이 심히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위가 떼법에 굴복해 모든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 것.

소수의 떼쓰기에 밀려 다수가 불이익을 받는 일은 전에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가 하계역을 떠난 뒤 역주행해 되돌아간 사건은 떼법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60∼70대로 추정되는 남자 승객이 차량 내의 비상 통화장치를 이용해 기관사에게 “하계역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 내리지 못했다”면서 욕설을 내뱉고 손해배상 운운하며 항의했다.

승객 한 명이 떼를 쓰는 바람에 전동차는 비상 상황에나 가능한 역주행을 했고 지하철에 탄 700여명의 다른 승객들은 불편과 불안을 겪어야 했다. 관제센터가 뒤따르던 전동차를 세워 충돌 위험은 없게 했다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동안 공포에 떨었을 승객들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더욱이 당시 전동차는 하계역에서 문을 열어 승객이 승하차한 뒤 출발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난 3월 전국 자영업자들이 삼성카드를 표적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지 않을 경우 거부운동을 벌이겠다는 실력행사에 나선 것도 떼법으로 사익(私益)을 추구하려 한다는 비난을 샀다. 국민의 권리가 억압되고 권리 구제장치가 미흡했던 과거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이러한 떼법도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떼법이 통용되면 그만큼 불법과 편법이 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호철 디지털뉴스부장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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