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베트남 소녀가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화상을 입은 채 달리는 한 장의 사진. 베트남 전 참상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알린 ‘네이팜 걸’ 사진이 게재된 지 올해로 40주년이다.

사진을 실은 AP통신은 1일 사진기자 후잉 콩 우트와 주인공 킴 푹을 인터뷰해 당시 상황과 이후 그들의 삶 등을 재조명했다.

폭격이 일어난 것은 1972년 6월 8일. 푹은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는 군인들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가족들이 숨어 있던 카오다이 사원을 급히 빠져나왔다. 그러나 손에 닿을 듯이 낮게 날던 비행기는 포탄을 퍼부었고 푹의 왼팔에도 불이 옮아붙었다. 급한 김에 옷을 벗어던지고 길로 뛰쳐나간 후 곧 의식을 잃었다.

당시 현장 취재 중이던 21세의 베트남인 AP 사진기자 우트는 푹을 차에 태워 근처의 작은 병원으로 갔다. 그는 미국기자증을 보여주며 소녀를 잘 치료해 줄 것을 부탁했다.

사이공으로 돌아와 사진 인화를 했으나 나체는 보도하지 못한다는 AP의 엄격한 규정 때문에 싣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뒤 한 경험 많은 사진에디터의 주장에 힘입어 이 사진은 전송됐고, 세계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사진의 위력은 엄청났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대대적인 반전여론을 조성해 베트남전 종전에도 한몫했다.

전신 30%에 3도 화상을 입은 푹은 여러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후 13개월 만에 퇴원했다. 이후 그는 의대에 진학했으나 공산베트남 정권은 그를 전쟁선전도구로 활용키 위해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푹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비로소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외신기자의 도움으로 쿠바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AP통신 LA지국에서 일하던 우트와 17년 만인 89년 재회했다. 이어 베트남인 유학생 부이후이토안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들 부부는 92년 모스크바 신혼여행길에서 캐나다로 망명한 후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유엔우호대사가 돼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 있으며 99년에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푹은 “나는 이 사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누구보다 감사하며 살고 있고 이것은 나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