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에 제청된 ‘소아마비 鄕判’ 김신 울산지방법원장, “결재권자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기사의 사진
“자신이 판사로서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 결재권자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신임 대법관에 임명 제청된 김신(55) 울산지방법원장은 “장애인과 약자, 소수자들을 위한 재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한 것 같다”고 6일 소감을 밝혔다.

김 법원장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 4명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다. 장애를 딛고 법관으로 임관해 법원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대법관에 오르게 된다면 1994년 임명된 김용준 전 대법관 이후 18년 만이다.

김 법원장은 7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80년 사법시험 22회(사법연수원 12기)에 합격한 후 82년 8월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판사 임관을 신청했다. 당시 법관은 65명만 필요한데 70명이 지원하자 김 법원장을 비롯한 장애인 4명과 운동권 출신 문재인(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모두 5명은 법관 임용이 거부됐다.

장애인 및 인권단체들의 비판 여론이 들끓자 5개월 늦은 83년 2월 부산지법 판사에 임용됐다. 김 법원장은 “장애의 벽을 느끼면서 시련의 시기였지만 오히려 이 계기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처음 신앙을 접할 수 있었던 계기는 법대 3학년이던 78년 가을 친구의 초청으로 한 선교회 집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부산 삼일교회 장로인 그는 집사시절에는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생활을 했다.

특히 그는 장애인과 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 왔다.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재직 땐 봉사단체 ‘사랑나눔봉사단’ 회장을 맡아 각종 봉사활동을 지휘했고 20년 전부터 ‘부산장애인전도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심방도 가고 반찬 배달도 해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장애인전도협회’는 경남 부산에서는 신임을 받고 있는 봉사단체다.

김 법원장의 가족들도 신앙심이 깊다. 부인은 같은 교회 집사로 활동 중이다. 서울 소재 대학 법학과에 진학해 아버지 뒤를 이어 판사를 꿈꾸고 있는 딸(25)과 아들(23)도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간다.

그는 돌 때 걸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보조기를 해야 걸을 수 있다. 그의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의대에서는 그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창시절에는 차별과 냉대도 받았지만 장애인도 성공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김 법원장은 회고했다.

김 원장은 법관이 된 후 30년간 부산지방법원과 고등법원, 울산지방법원 등에서 민사·형사·행정·파산 등 다양한 재판 업무를 담당했다. 지역에서는 재판실무와 지역사정을 적절히 조율하며 무난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법리 연구를 지속하는 등 재야 법조계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 법원장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소망이다. ‘장애’란 운명에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으로 극복해 미국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 자리에 올랐던 지난 2월 췌장암으로 별세한 고(故) 강영우 박사처럼 되는 것이다.

김 법원장은 대법관으로 임용될 경우 “장애인 법관으로 장애인이나 약자 등을 위해 법률과 양심의 범위에서 그들을 보다 더 헤아리겠다”고 말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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