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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박정태] 종편과 ‘판도라의 상자’

[데스크시각-박정태] 종편과 ‘판도라의 상자’ 기사의 사진

지난해 12월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출범한지 6개월이 됐다. 2010년 말 선정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차별화된 콘텐츠 생산, 시청자 채널 선택권 확대, 미디어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보수 성향 신문에 종편 채널을 무더기로 허가했다. 1개 정도가 적정선이라는 지적도 무시하고 방통위는 4군데에 채널을 부여했다. 광고 직접영업 등 온갖 특혜도 베풀었다. 전형적인 권언유착으로, 종편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종편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청자 외면으로 0%대 시청률이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달 평균 시청률은 0.3∼0.5%대에 불과하다. 가구 수로 따지면 1000가구 가운데 3∼5가구만 본다는 얘기다. ‘애국가 시청률’과 도토리 키재기다. 일일 방송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애국가가 나올 때 시청률은 과거 2∼3%대에서 요즘 0∼1%대다. 콘텐츠도 빈약하다. 드라마 예능 스포츠 교양 뉴스 등 모든 장르를 편성할 수 있음에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생각은 않고 지상파 따라 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지상파에 밀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되거나 축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광고 매출도 당초 예상보다 저조하다. 그러다 보니 긴축경영이 불가피해 비용이 적게 드는 뉴스·교양에 치중하거나 재방송을 반복해 내보내는 등 무늬만 ‘종합편성’으로 전락했다. 모 종편 채널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설까지 돌고 있을 정도니 그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이를 예견하듯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종편 출범 한 달 뒤인 올 1월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편 시청률이 0.3% 정도 나오는데 이대로 가면 무조건 망하게 돼 있다. 종편만 망하는 게 아니라 숙주인 신문까지 끌고 들어가서 같이 망하게 된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도 지난달 학술대회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다. 종편이 모회사인 신문을 잡아먹는 카니발리즘(제살 깎아먹기)이 시작됐다고.

한마디로 현 정부의 종편 정책은 실패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였는지 그 전모가 공개돼야 한다. 종편 선정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된 불공정 심사 및 특혜·로비, 기업·단체의 중복투자 의혹 등이 밝혀져야 한다는 말이다. 법원이 지난달 25일 심사자료와 회의록 등 종편·보도채널 선정과 관련된 모든 자료(개인 정보 제외)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도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불공정 심사 논란과 관련해선 이미 의심이 갈 만한 구체적인 정황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전체 44개 세부 심사항목 가운데 계량적 항목(9개)에선 탈락사보다 낮은 점수를 받고도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평가로 이뤄지는 비계량적 항목(35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4군데 종편 승인이 결정됐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방통위가 담당 재판부에 제출한 ‘종편 승인 백서’에 담긴 내용이다.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외면하고 있다. 항소를 통해 시간을 질질 끌겠다는 속셈인 듯하다. 뭔가 구린 게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꼭꼭 숨기겠는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정부가 그렇게 주장해온 시장 원리도 무시한 채 밀실 심사를 통한 정치적 결정을 했으니 자료 공개를 두려워할 법하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그리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책결정자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반드시 열려야 하는 이유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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