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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김상온]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소년 결사대

[여의춘추-김상온]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소년 결사대 기사의 사진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북한 주민들은 발작적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당시 그것이 과연 진정에서 우러난 것인지 의문을 던졌다. 옥스퍼드대의 신경과학자 캐슬린 테일러 연구원은 ‘김정일이 북한 사람들을 세뇌시켰는가?’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에서 일부는 연출된 것, 즉 허위일 수 있지만 나머지는 세뇌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실제로 북한을 이해하려 할 때 집단세뇌라는 개념을 빼고는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일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봉건왕조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한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임에도 주민들은 왕조시대와 다르지 않은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을 지지하고 반기기까지 한다. 이런 행태는 단순히 거기에 반대할 경우 가해지는 신체적 위협에 따른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세습 지도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내면화·의식화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집단 세뇌가 아니면 이룰 수 없다.

세뇌 말고는 이해 못할 北 현실

북한에서 이러한 집단 세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당연하다. 원래의 색깔을 지우고 새로운 색을 칠하는 것보다 백지에 원하는 색을 칠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학령 전부터 탁아소와 유치원이라는 국가 교육기관을 통해 ‘대를 이은 충성’ 등 정치사상을 주입받는 북한 어린이들은 그 다음 단계로 ‘조선소년단’에서 세뇌된다. 만 7세부터 13세까지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가입해 지역별·학교별로 조직 운영되는 소년 전위조직인 소년단의 설립 목적은 어린이들을 당과 수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충성하는 혁명투사, 특히 수령의 ‘총폭탄’으로 양성하는 것.

바로 이 소년단 창립 66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성대하게 치러졌다. 전국에서 어린이 대표 2만명이 평양으로 불려 올려진 전례 없이 큰 행사였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소년 소녀들은 이제 28세인 김정은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목청껏 외치며 불타는 충성 맹세를 다졌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김정은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소년 결사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새 세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으라”고 화답했다.

이 이례적인 행사를 놓고 남한 언론들은 김정은의 김일성 흉내내기(김일성은 생전에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제스처를 곧잘 보여줬다), ‘고난의 행군’ 이후 출생한 이른바 장마당 세대 길들이기, 장래 자신의 체제를 뒷받침할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 등 이런저런 분석을 내놨다. 그리고 그중에는 ‘히틀러 유겐트’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자 북한은 인민군 총참모부 명의의 ‘공개통첩장’을 통해 ‘보복성전’, ‘조준타격’ 등을 거론하며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그 지적이 정곡을 찔렀거나 아프다는 반증이다. 즉 뭐니 뭐니 해도 행사의 핵심은 어린이들에 대한 세뇌임에 틀림없다는 얘기다.

통일 앞서 재사회화 대책부터

문제는 이렇게 세뇌된 어린이들, 한민족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민족’인 이 어린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민족통일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분단된 지 7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그렇지만 이들이 어른이 되는 약 20년 후면 남북한은 도저히 같은 민족이랄 수 없게 될 게 뻔하다.

서울대 박성조 교수 등이 지적했듯 ‘가치관과 체험 등에서 어떠한 공감대도 없는’ 남북한 사람들은 더는 같은 민족이랄 수 없다. 이들에 따르면 ‘체제와 이념 앞에 막연한 동족개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통일 독일이 보여준다(‘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 민족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북한 주민들의 재세뇌, 재사회화 대책부터 수립하는 게 절실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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