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김서현] 역사 속 인물이 좋았을 텐데 기사의 사진

임수경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막말 파문이 우리를 20여년 전 세계로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그녀의 이름이 비례대표 명단에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걱정이 됐다. 그 우려와 느낌이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20여년 전 그녀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1989년 6월 30일, 한국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녀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방북해 46일 뒤 판문점을 통해 입국했다. 우리도 놀랐고 세계도 놀랐다. 한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미모 여대생의 방북은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비록 실정법은 어겼지만 그 나이에 그녀는 큰일을 해냈다. 그녀를 보낸 전대협의 의도와 달리, 그녀는 북한 대학생들에게 남한에 대한 열망을 품게 했다. 그녀의 숨길 수 없는 자유분방함, 풍요롭게 자란 분위기는 남한의 공기였다. 그녀의 도발적 행동은 통일의 필요성, 당위성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통일의 꽃’이 된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최근 또다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대형 사건을 터트렸다. 국회의원이 된 그녀가 술자리에서 일반인의 상식을 뒤엎는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탈북대학생을 향해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하태경 변절자 XX”라는 등 막말을 퍼부은 그녀의 정신상태가 너무도 궁금하다.

그녀가 변절자라고 막말을 한 하태경이나, 80년대 주사파 대부였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북한인권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도 달라진다. 그녀는 변절이라 했지만 우리는 전향이라 한다.

그녀가 막말을 퍼부은 탈북자들의 삶은 어떤가. 탈북자들은 생사를 걸고 북한을 탈출했다. 탈북자들이 살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이나 남한에 정착하기까지의 경로를 들으면 인간 존재와 생명의 존귀함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탈북자들이 무엇을 변절했다는 것일까. 미국에서 인권법을 공부했다는 그녀에게 북한인권이 이상한 짓인가. 인권에 이중 개념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취중 말실수라고 일단 사과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절제되고 입 밖으로 다 나오지는 않는다. 이성의 필터를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다 취중에 이성의 제어력이 약해진 틈을 타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취중 말실수란 없다. 취중 진담이 있을 뿐. 평소 그녀의 탈북자에 대한 적개심, 북한인권 운동가들에 대한 적개심이 취중에 쏟아져 나왔다고 보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막말 파문을 통해 볼 때, 그녀는 20대의 세계인식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그녀의 유명세는 김일성에 빚진 바 크다. 그녀는 김일성과 포옹한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삶에서 가장 화려했던 한 시절이, 평생 그녀에게 정신적 성숙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빚을 지면 그 부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김일성 사후의 북한 현실에 눈감고, 귀 막고 살 수 있을까.

세계가 기적이라며 주목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시대적 사명을 다하며 이뤄 온 것이다.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르고 이룬 오늘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 세대를 넘어서야 한다. 정반합의 변증법에서 합으로 나아가야 할 단계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은 그녀, 차라리 역사 속 인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으면 참 좋았을 것을….

김서현 법무법인 세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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