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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고승욱] 대법원 구성 원칙은 다양성

[데스크시각-고승욱] 대법원 구성 원칙은 다양성 기사의 사진

1954년 5월 1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 학생을 분리해 교육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인종차별 철폐에 한 획을 그은 ‘브라운 판결’이다. 미국인의 삶과 철학을 바꾼 대법원의 판결로 흔히 인용되는 사건이다.

CNN의 법조담당 해설자 제프리 투빈은 2008년 ‘더 나인(The Nine)’이라는 책에서 연방대법관 9명의 판단이 미국 사회를 얼마나 들썩이게 했는지 자세히 묘사했다. 따지고 보면 브라운 판결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1789년 첫 대법관 제임스 윌슨을 임명한 이후 미국과 세계를 바꿔나간 수많은 판단 중 하나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영어로 ‘저스티스(Justice)’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정의’를 의미한다. 이들은 미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마지막 판단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대선 당시 플로리다주에서 개표 문제가 터졌을 때 이들은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사람들은 당시 판결이 달랐다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미국 연방대법관의 영향력은 세계 최고 권력이라는 미국 대통령에 못지않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화당 소속 대통령은 보수적인 인물 중에서 대법관을 찾고, 민주당 대통령은 반대다. 그런데도 균형을 이룬다. 현재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보수 성향 대법관은 5명이다. 진보 성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여성 대법관 2명을 비롯해 4명이다. 대법관은 한번 임명되면 죽거나 스스로 물러나기 전까지 업무를 계속하는 종신직이다. 보통 20∼30년 재직한다. 연임을 해야 임기가 8년인 대통령이 대법원 구성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싶지만 꼭 그렇지 않다. 임기 중 사임하거나 숨진 대법관이 한 명도 없었던 대통령은 지미 카터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 대통령이 대법관 1∼2명씩을 임명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권교체가 반복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균형이 이뤄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대통령은 대법관을 임명할 때 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스스로 균형을 잡는 이 원칙을 ‘법관 임명의 황금률’이라고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0년 엘리너 케이건 대법관을 임명할 때 단순히 진보적 성향만 고려한 게 아니었다. 케이건은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주장했다. 주정부보다 연방정부를 중시하는 것은 공화당의 기본 노선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혼에 유대인, 판사 경력도 없는 그를 선택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을 대신할 후보 4명의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곳곳에서 대법원의 다양성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고위 법관이 사법연수원 기수에 따라 대법관에 임명되는 풍토는 바뀌어야 하는 게 맞다. 지금이라도 사법부가 다양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를 바꾸자는 주장은 아니다. 2005년 은퇴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미국의 첫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무난하게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여성 후보자를 물색했다. 하지만 오코너는 24년 동안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낙태, 인종차별, 종교의 자유 등에서 진보적 성향을 뚜렷이 드러냈다.

우리나라 대법관도 소수자의 목소리와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신념을 분명히 보여준다면 대법원이 사회 변화를 못 따라갈 이유가 없다.

고승욱 사회부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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