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네 편 내 편 없애기 기사의 사진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식인들이 조장하는 편가르기가 의외로 심각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7일 대선 출마선언을 하면서 “보통사람이 주인인 나라,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진정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중정치인으로서 친숙한 느낌이 덜했던 문 고문이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게 할 만한 발언이다. 정치인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 말에서 기꺼운 느낌을 받은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가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도무지 화합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지경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편 가르기가 얼마나 심한가 하면 ‘전국 편 가르기 지도’라는 것이 있을 정도이고, 전국 단위의 선거를 실시해 각 지역의 지지도를 색깔로 표시하면 이 작은 나라의 동쪽과 서쪽이 완전히 다른 나라처럼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현상인 듯 고착화되었다. 선거가 끝나면 전국의 인재 기용 현황이 출신학교와 출신지역별로 재편된다. 장·차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여러 조건을 안배라도 하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면 조직의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편 가르기는 일종의 공식처럼 지배한다.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의 고질병이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몇 년간 살아온 강서구의 한 동네에서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이 동네를 떠나면서 마음 속 깊이 감사한 것이 있다. 장애우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누구든 사람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절실하게 깨달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왔을 때 느낀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장애우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노년의 장애인들이 새벽 시간에 시끌벅적하게 술판을 벌이는 장면을 본 적도 있고, 구립 체육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풀 속에 웬 장애인이 그렇게 많은지 의아해한 적도 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시립 장애인 아파트가 많은 동네였다.

지체·지적장애우들을 자주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이 그들은 비장애우들보다 훨씬 잘 웃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함빡 웃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그 표정은 그냥 살포시 짓는 미소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짓는 미소, 금방 울음으로 바뀔 수도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만드는 미소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의미를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쪽과 이쪽이 통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벽이 없다. 체육관에 가다 만나면 자판기에서 커피도 곧잘 뽑아준다.

새로 이사 온 곳은 좀 더 변두리, 창 밖으로는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루 종일 수런거리는 산 밑의 동네다. 단지 내의 슈퍼마켓에서 이 동네 사람들의 인심이 참 좋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과연 그런 표징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 담장을 따라 걷다 보니까 중간에서 이쪽 아파트와 저쪽 아파트의 담장이 사라지고 어린이 놀이터와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두 아파트가 중간 지점의 담장을 없애고 공동 놀이터와 작은 공원을 만든 것이었다. 양쪽 아파트의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모두 이 공간을 잘 이용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너희 쪽 우리 쪽 구분 없이 담장을 치지 않고 오가는 경우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것이 희망이 아니고 무엇인가. 얼마 전까지 살던 마을의 장애인들과 산 밑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벽 없이, 너희와 우리를 가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당이냐 야당이냐,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치 문제로 옮겨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정치에 너무 민감하고 편 가르기가 심해서 자력으로 민주화를 일군 사회치고는 구심력이 더 이상 강해지지 않고 있다. 지금 한국의 문화유행이 지구촌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지만 더 강력한 플러스알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세계인들이 감동을 받을 만한 문화적 구심력이 분출돼야 한다. 문제는 정치인들과 지식인 그룹이다.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식인들이 조장하는 편 가르기는 더욱 구조화되고 있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