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찬웅] 불평등 줄이면 신뢰 높아져 기사의 사진

우리 사회의 문제점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저신뢰사회’라는 것이다. 국제비교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은 낮은 수준의 신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사실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흔히 ‘연줄사회’라고 불릴 만큼 가족, 친구, 동문에 강한 신뢰가 존재한다. 이러한 일견 모순되는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뢰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신뢰를 공적(公的) 신뢰라고 한다면 두 번째 유형은 사적(私的) 신뢰다.

동질집단 의존도 지나치다

공적 신뢰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거나 개인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다. 이에 비해 사적 신뢰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거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에 대한 신뢰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신뢰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누구에 대한 신뢰인가라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 사회의 특성은 사적 신뢰는 매우 강한데 비해, 공적 신뢰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평소 알던 동창이나 고향 친구는 전 재산을 걸고라도 빚보증을 마다하지 않지만, 낯선 사람은 일단 의심부터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신뢰 문제는 신뢰의 대상 범위가 매우 좁고,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동질적인 집단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공적 신뢰와 사적 신뢰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다르다. 공적 신뢰가 높은 사회일수록 경제 성장이 촉진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진다. 반면 사적 신뢰가 높은 사회는 사회 내 집단 간 반목과 충돌이 심하고, 정치적으로는 부패가 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며, 민주주의 역시 낮은 수준에서 정체된다.

공적 신뢰와 사적 신뢰의 대조적 효과는 남부와 북부 이탈리아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외부의 지배를 받던 남부 이탈리아는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사적(私的) 집단이 형성되었고, 마피아의 원조가 된 이런 사적 집단은 강한 집단 내 신뢰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남부 이탈리아는 같은 집단 구성원끼리 강한 사적 신뢰를 만들어냈지만, 집단 간 끊임없는 충돌과 함께 사회 전체의 공적 신뢰 자체가 파괴되었다. 이에 반해 북부 이탈리아는 공적 신뢰가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었고, 제도에 대한 신뢰와 함께 민주주의의 상대적 발전을 경험했다.

다양한 사회적 교류 많아져야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공적 신뢰가 다른 사회와 비교해서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다양한 자원단체의 부재이다. 자원단체는 운동, 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관심을 추구하기 위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조직이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자원단체들이 존재하지만, 개인들이 자원단체에 참여하는 경향은 극히 낮다. 따라서 자원단체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사회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두 번째로 공적 신뢰 형성에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평등한가이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계층 간 사회적 교류가 줄어든다. 이런 과정에서 자원단체에 가입하더라도 자원단체에서 만나는 사람은 같은 계층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원단체를 통한 공적 신뢰 형성 기회가 제한되게 된다. 결국 공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과 복지정책 등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평등한 사회와 믿고 사는 사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박찬웅(연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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